불면증도 아닌 것이 머리는 지끈지끈하고 잔병도 많은 요즘이다. 부스스한 상태로 눈을 간신히 뜬 다음 반자동 기계처럼 몸을 씻고 옷 입고 구두를 신고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50분 버스를 타면 간당간당하고 45분 버스를 타면 그나마 안심이다.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가다 보면 어느새 회사 역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걷다가 동기와 커피 한잔하면 출근 세이프. 5년을 채워가는 아침 풍경이다 보니 새로울 거라곤 딱히 없는 일상이다. 긴 통근 시간만큼이나 피로해 보이는 아침이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어폰 속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못다 한 클립 영상 챙겨보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후 펼쳐지는 시간들은 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크게 차이는 없을 거 같다. 어디서는 누군가의 뒷담화가 만개하고, 누군가는 상사에게 깨지고 일에 치이다 보면 이 작은 공간에서도 무수한 역학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음에 이내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너무나 그런 관계에 무뎌지고 싶고 피하고 싶어도 직장인의 숙명처럼 그 일의 당사자가 되는 일도 허다하고 목격자이자 방관자가 되는 일도 많다. 괜히 처신을 잘하라는 말이 나왔을까. 회사생활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방책이기에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조언이다. 위에 계신 상사이자 선배님들이 그래서 대단해 보일 때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처신했길래 지금까지 버틴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만들었을까.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흠.
잡생각 같은 고민은 길지 않다. 왜냐면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니면 또 다른 가십거리가 수군수군 우리를 간지럽힌다. 혼을 쏙 빼놓는 일이 비일비재 하기에 주변을, 동료를 돌아볼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심적 여유가 충분치 못할 때도 있고 아니면 위에서 쪼는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욕을 먹기 싫기 때문에, 약속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이유는 다양하다. 관계는 깊으면서도 얕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겪는 일도 많지만 반대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삭이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남편, 아내, 가족들도 그 속을 훤히 보지 못하는데 하루 8시간 아니 그 이상을 보낸다고 해도 직장 동료 간 서로의 속을 또 얼마나 알까 싶기도 하다.
다만 내 주변 누군가의 아픔이나 상처의 깊이는 모른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당신은 아픕니다, 다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증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만큼 곪아 터지기 쉽다. 화살은 본인에게 쏠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책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모는 게 차라리 속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게 내 탓,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등장하는 방어기제는 문제의 원인을 심하게 왜곡할 때가 많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원인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최소한 당사자가 문제를 바로 볼 수 있도록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본 목격자라면 말이다. 목격자도 언젠가 이곳, 회사라는 공간에서 상처에 찔리고 덧나면서 홀로 괴로워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도 모레도 출근이다. 조용하길 바라보지만 조용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일로 정신없을 거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욕심을 채우는 순간도 있을 테다. 일상은 그만큼 철저히 나만의 시곗바늘에 따라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놈의 일상이 특별한 건 그 속을 채워주는 사람들, 누군가의 아픔을 지켜보고 외면하지 않는 동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직장생활이라는 풍파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당당히 똑바로 설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또한 결국 사람의 힘이라는 것을 한껏 느낀다. 꽃샘추위가 매서운 요즘이다. 그래도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