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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라잎 May 23. 2024

너는 유일하고 특별해.

베를린에서

딱 한 명. 나의 아이는 유일한 아이였다. 유치원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이방인이었다. 어떤 집단에서 단 한 명이라는 존재는 ‘특별함’으로 빛나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상함’으로 튀는 존재라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다르게 보이고 다른 행동을 하면 모나 보이는 이상한 유일함을 아이는 만 4세에 온몸으로 배웠다.


“엄마, 왜 나는 머리가 노란색이 아니야?”
 “…… 엄마아빠 머리카락이 검은색이고 너는 엄마아빠 딸이니까.”
“엄마, 그럼 나도 초록색 눈이 될 수는 없는 거지?”
“그렇지. 너는 검은색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를 가진 어린이지.”


아이는 좋아하는 빵집에서 좋아하는 건포도 빵을 먹는 중이었다.


“에마는 머리가 노란색이고 눈은 초록색이야. 마리에트는 머리는 갈색인데 꼬불거리고 눈은 파란색이야. 나처럼 머리가 검은색인데 눈도 갈색인 친구는 없어. 나도 친구들처럼 머리가 노란색이고 눈이 초록색이었으면 좋겠다.”


건포도 빵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가 겨우"왜?"라고 물었다.


“친구들처럼 독일어 잘하게.”


아이의 대답은 또렷했다. 건포도 빵을 우걱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왜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아이에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좀 당황했다.


내 아이가 유치원의 유일한 아시아인이 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또래보다 의사전달력이 좋아 세상과 소통이 자유로웠던 종달새 같던 아이는 이곳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치만 늘어가던 중이었다. 어린 마음에 외모가 바뀌면 독일어가 자유롭게 될 거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독일 유치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호기심에 다가왔던 유치원 아이들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아이는 유치원 아이들의 단짝 친구들이 자리를 비울 때 놀아주는 깍두기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고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아이보다 몇 살 적은 아이에게 팔을 물려 피가 나도 유치원선생님에게 의사표현을 할 수 없어 피부가 덜렁 거리는 채로 픽업하러 온 엄마를 만난 적도 있다.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 잘 웃고 사사건건 선생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던 기억 속의 아이는 점점 희미해지고 다른 아이들의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주눅 들어 있는 낯선 아이만 내 곁에 있었다.


매일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는 경고등처럼 깜빡깜빡 빨간 불을 켜고 "엄마, 도와줘!"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도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장 아이를 편하게 해주려면 내가 아이를 끼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이를 고립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를 편하게 해주면서 이 산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바른 방법’으로 도와야 했고 또 함께 나아가야 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아이 대신 유치원을 다닐 수 없으니 나는 너의 엄마고 나는 널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언제고 든든한 누군가가 너를 지킬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뿐이었다.


“독일어 잘하고 싶지? 그러면 친구들 하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아이와 빵집에서 나와 놀이터 근처 벤치에 앉아 친구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물었다.


“어. 난 친구들한테 슈필렌(Spielen) 하자고 하거든. 그러면 애들이 나인(Nein)이라고 그래. 그러면 난 혼자 놀아.”

“그렇지. 참 싫겠다. 한국에서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응.”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해맑아 더 슬펐다. 나는 아이에게 힘주어 이야기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갑작스러운 물음에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엄마는 내 엄마지.”라고 답했다.


"맞아. 엄마는 네 엄마니까 널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네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야. 엄마가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 옆에 있었어. 앞으로도 언제나 열심히 네 옆에 있을 거야. 엄마가 친구들에게 너랑 놀아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네가 친구하고 속상한 일이 있거나 너를 때리거나 괴롭히면 그때는 너를 꼭 지켜줄 거야.”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을까?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저 물끄러미 놀이터의 친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공중에 흩어진 말들은 던져진 부메랑처럼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아이의 엄마로 단단하게 있어야만 한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아이가 속상한 이야기를 하거나 나에게 무슨 요청을 해오면 앞뒤 따지지 않고 아이의 말에 반응해 주려고 애썼다. 친구와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나 전화번호를 물었다. 유치원 반 아이가 놀렸다고 하면 최대한 아이의 말을 묘사해서 편지를 써서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이 모든 행동은 ‘엄마는 항상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엄마가 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 널 도울 거야’라고 아이에게 말해주는 나의 표현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소중한 아이야.’라고 생각해 주길 바랐다.


초등학교를 국제학교로 진학한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이의 학급에서 주목받는 유일한 아이는 아니다. 국제학교는 말 그대로 국제적이라 아이의 존재가 부각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검은색 머리와 부족한 독일어로 아이를 재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이 어디 있어?"라고 질문하고 "나는 일본은 좋아해, 하지만 한국은 안 좋아해."라고 말하는 어린이들 속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외모 때문에, 언어 때문에 의도치 않은 유일함을 감당하지 않는 것이 엄마로서는 편안하다. 그런 어느 날 아이가 문득 유치원 때와 비슷한 화두를 꺼냈다.


“엄마, 오늘 퍼닐라가 나한테 "넌 왜 눈에 라인이 없어?"라고 했어.”
“무슨 라인?”
“친구들은 눈에 다 라인이 있잖아. 근데 난 없으니까.”
“아, 쌍꺼풀. 그걸 쌍꺼풀이라고 그래. 그래서?”
“난 없는 게 좋다 그랬는데?”


건포도 빵을 먹던 그날처럼 무심하게 말했지만 쌍꺼풀 없는 자신의 눈이 만족스러운 듯 말하는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감사했고 기뻤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와 모국어에 상관없이 다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그 모든 세상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보듬고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매일 새롭게 자신의 유일함과 타인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그때까지 나는 아이의 든든한 안식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는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면 엄마로서 나는 아주 감사할 것이다. 오늘도 그날들 중에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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