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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주 Apr 21. 2021

아프리카의 노동자들,
새로운 미술관으로 운명을 되찾다

검은 대지의 "화이트 큐브"

New York Times (2021년 4월 13일자)
제목  아프리카의 노동자들, 새로운 미술관으로 운명의 주권을 되찾다
원제  With a New Museum, African Workers Take Control of Their Destiny
저자  니나 시걸(Nina Siegal)  |  번역  조현주


네덜란드의 한 아티스트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의 협력 하에 언젠가 유럽의 박물관들로부터 반환 받을 아프리카의 예술품을 소장하기 위한 “화이트 큐브”를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영화 감독이자 예술가인 렌조 마르텐스(Renzo Martens)가 2010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그의 영화 “에피소드 III: 빈곤을 즐겨라”를 선보였을 때, 그는 박물관의 하얀 벽을 뒤덮은 ‘유니레버'의 로고들에 눈길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본사가 위치한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는 Axe, 도브(Dove), 바세린(Vaseline) 등을 비롯한 다수의 생활용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으며, 매년 아티스트를 선정해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Turbine Hall)[1]에 장소 특정적 작품을 전시하도록 하는 ‘유니레버 시리즈(Unilever Series)’를 후원하고 있다. 2010년의 경험을 회상하며 마르텐스는 그의 다큐멘터리 최신작 “화이트 큐브 (White Cube, 2020)”에서 “유니레버, 유니레버, 유니레버 시리즈...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전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유니레버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되뇌인다.

 

마르텐스가 2004년부터 활동해온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의 유니레버는 한때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는, 다시 말해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다큐멘터리 “에피소드 III: 빈곤을 즐겨라”를 통해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한 채 팜유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콩고 노동자들의 지독한 삶을 담았다. 이후 다큐멘터리 “화이트 큐브”에서 마르텐스는 유니레버가 소유했던 보테카(Boteka)와 루상가(Lusanga) 마을의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방문하며 기록을 이어갔다. (유니레버는 2009년에야 콩고에서 소유하고 있던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전면 처분했다.)

 

마르텐스에게 유니레버는 서구의 기업들이 빈곤한 나라로부터 자원을 추출하고 소득을 창출한 다음, 그 부(富)의 일부를 전혀 다른 곳의 고급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사용하는 국제적 착취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그는 유니레버가 후원하는 아티스트들 중 몇몇은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만들지만, 정작 그러한 작품들로 얻는 이득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된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르텐스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사람들은 국제 사회를 위해 일하지만 극도로 가난하다. 그들은 심지어 간접적으로는 테이트 모던의 전시들을 위해 일한다. 만약 어떤 예술이 불평등에 관한 것이라 하여도 실제로 그것이 불평등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그 예술이라는 것은 쓸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비판이 미약하나마 그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속내를 밝혔다.

 

“에피소드 III: 빈곤을 즐겨라”의 2010년 발표 이후 아티스트로서 마르텐스의 커리어는 궤도에 올랐고, 그때 당시 그는 새롭게 얻게 된 예술계에서의 영향력으로 ‘역(逆) 젠트리피케이션[2] 프로젝트(reverse gentrification project)’를 시도하고자 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위치한 지역의 자체적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그곳으로 직접 예술을 유입시키는 것이었다. 이번 달(2021년 4월)에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 콩고의 킨샤사,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그리고 도쿄 등의 도시를 포함한 전세계의 아트 센터들을 순회하며 상영되는 러닝타임 77분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이트 큐브”는 그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코펜하겐에서 4월 21일부터 5월 2일까지 열리는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예술가인 렌조 마르텐스 (출처: New York Times)

 

화이트 큐브 어느 지역 사회를 예술을 통해 변화시키고자  프로젝트에 대한 영화이자 기록이다. 부유한 국제 예술계와 빈곤한 아프리카 플랜테이션 농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추적함으로써, 마르텐스는  지구의 ()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얽혀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의 중심에는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보상, 자원 반환, 그리고 금전적 배상에 대한 쟁점들이 놓여있다. 예술은 그동안 그것이 그토록 많은 것을 추출해왔던 대상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화이트 큐브"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많은 정부들이 공립 미술관에 소장된 아프리카로부터 약탈해  예술품들의 목록을 파악할 것을 약속오늘날 특히 의의가 있다. 2017년, 프랑스의 에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규모 예술품 반환을 시작할 것을 서약했다. 그가 의뢰한 연구를 통해 90 에서 95% 달하는 아프리카의 예술품이 아프리카 이외의 박물관들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작년(2020)에는 네덜란드 정부의 자문위원회가 네덜란드 역시 식민지였던 나라들에게 예술품을 반환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마르텐스는 “반환되어야 하는 것은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오래된 물건들 뿐만이 아니라 수탈당한 사회의 기반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예술은 어디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영화 “화이트 큐브”는 2012년, 마르텐스가 플랜테이션 농장이 가동중인 콩고의 마을 보테카로 예술을 들여오려고 시도한 해부터 시작한다. 일은 금방 틀어지게 되는데, 유니레버가 플랜테이션을 떠난 후 그곳을 넘겨받아 운영 중이었던 콩고의 회사로부터 협박을 받으며 마르텐스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 후, 비슷한 시도를 한 루상가(유니레버의 원류인 회사의 창립자 윌리엄 레버의 이름을 따 ‘레버빌’이라고 불렸었던 마을)에서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중략]


영화에서 마르텐스는 유니레버가 20세기 초 벨기에의 식민지 행정관들로부터 토지 보조금을 받아 콩고의 플랜테이션 농지들을 확보했고, 그 땅에서 이윤을 거두고 토양을 고갈시킨 다음 토지를 매각해 더이상의 가망이 없는 사업을 하청업자들에게 떠넘겨 버렸다고 말한다. 유니레버 측은 마르텐스의 영화와 기업이 자행한 착취에 대해 그가 지적한 부분들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유니레버의 대변인 마를라우스 덴 비에만(Marlous den Bieman)은 뉴욕타임즈와의 이메일 교신에서 “자사(自社)는 소유했던 콩고의 플랜테이션들을 매각한 이후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농장들의 운영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콩고의 전직 농업 노동자들은 조각을 제작하는 루상가 지역의 아트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를 자원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주재료인 팜유를 직접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에 단 한번 맛보기도 힘들었던 진미인 초콜릿으로 조각들을 주조했고, 그 작품들은 뉴욕의 한 아트 갤러리에서 판매되었다. 자원한 노동자들은 ‘콩고 플랜테이션 노동자 예술 연합(Congolese Plantation Workers Art League)’를 결성해 판매 수익금을 나누었다. 연합의 회장인 르네 느공고(René Ngongo)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까지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가 콩고 지역사회를 위해 벌어들인 수익은 40만 달러에 달하고, 그 중 절반 정도의 자금을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콩고 플랜테이션 노동자 예술 연합의 회원들 (출처: New York Times)


루상가 프로젝트의 가장 주요한 작품으로 마르텐스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쿠울하스(Rem Koolhaas)의 회사 OMA에게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해당하는 “화이트 큐브,” 즉, 미술관을 무상으로 설계해줄 것을 요청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르텐스는 네덜란드의 자선사업가와 협상하여 건축 비용을 지원받았고, 콩고 출신 건축가 아르센 이잠보(Arséne Ijambo)와 협업했으며, 현지의 건설 노동자들을 고용해 지역 경제에 이바지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술관, 다수의 아트 스튜디오, 컨퍼런스 센터, 그리고 숙박 시설을 짓기 위해 총 25만 달러 규모의 민간 투자가 모금되었다.


콩고에서 보내온 최근의 영상 인터뷰에서 초콜릿 조각을 주조한 루상가의 주민 중 하나인 세다르트 타마살라(Cedart Tamasala)는 어릴 적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을 꿈꿨으나 등록금을 지불할 돈이 없어 킨샤사 지역의 예술학교에서 자퇴를 강요 받은 후 삼촌의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무임금으로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는 그에게 수입과 안정감을 주었고, 자율성에 대한 인식을 되찾아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제 우리에게도 우리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중략]


타마살라의 "How My Grandfather Survived"(2015)와 연합 회원들의 작품 (출처: Joshua Bright for New York Times)


화이트 큐브 미술관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여파로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이지만 현지의 아티스트 작품들을 전시할 계획들이 구상 중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박물관들로부터 반환 받게 될 예술품들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2005년부터 마르텐스와 함께 일해온 인권 운동가 쟝-프랑소와 몸비아(Jean-François Mombia)는 이메일 교신에서 “루상가 미술관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열망은 그곳이 납치된 우리 예술의 송환을 지원하게 되는 것과 더 나아가 우리들이 스스로를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루상가의 화이트 큐브가 콩고 전역의 미술관들이 예술을 꽃피우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마살라는 식민지 시대에 콩고에서 훔쳐 간 예술품을 되찾는 것은 그의 마을이 수탈당한 모든 것에 대한 작은 보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예술품 외에도 다이아몬드, 금, 팜유 등 너무 많은 것들을 가져갔다. 어떤 것을 원상으로 되돌린다면, 그것은 예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들은 마르텐스는 자신이 낙후된 플랜테이션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까?

 

“아직 한계는 보이지 않는다. 가능성이 보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예술이란 “이렇게나 무수한 긍정적 효과를 부르는 마법의 지팡이”라고 마르텐스는 말한다. “이런 일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벌어져야 한다. 뉴욕, 암스테르담, 두바이, 혹은 케이프타운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화이트 큐브"의 한 장면 (출처: New York Times)



[1] 현대예술계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테이트 모던의 입구 격인 공간으로, 광장 같은 스케일과 높은 천장고를 자랑해 대형 조각 또는 설치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출처: Tate Modern 홈페이지

https://www.tate.org.uk/visit/tate-modern/turbine-hall)


[2]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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