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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Mar 04. 2024

토독토독

영상에 내린 눈 같은 인스타 스토리 





엄지를 토독토독, 두드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긴다. 대학교 선배가 영화 <웡카>를 보고 티모시 샬라메와 사랑에 빠졌고,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은 남편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었으며, 친구는 예배를 마치고 여섯 살 아들과 코인노래방에 다녀왔다. 팔랑팔랑 스토리를 넘기면 무심히 반짝거리며 타인의 순간들이 쏟아진다. 보들보들한 계란 이불을 덮은 카페 나하의 오므라이스 덮밥과 통통한 에비카츠를 시켜 먹은 나의 소식도 둥실 띄운다. 복숭앗빛 피치 장미가 한가득 올려진 화병과 함께.



나의 프로필 사진 옆으로 새 스토리가 올라왔음을 알리는 선홍빛 테두리가 반짝거린다. 크고 볼드한 글자로 외치는 현수막처럼 한 번의 눈길을 원한다. 24시간이 지나면 영상의 날씨에 내린 눈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스토리를 올리는 마음은 뭘까.


선명하게 느껴지는 좋은 순간을 나누고 싶지만, 굳이 대화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스토리를 올리고 나면 각자 방안에서, 지하철에서, 길을 걸으며 다른 장소에 있어도 좋은 순간을 말없이 함께 바라보는 풍경을 생각한다. 찰나지만 내가 느낀 좋음이 당신과 공유되길 바라면서. 남자친구가 보내준 오므라이스의 계란 이불을 통통 두드려보며 감기로 골골대던 내 마음에 얼마나 온기가 들었는지, 와아- 하고 환호하듯 피어나는 소담한 피치 장미가 얼마나 찬란하게 시간을 담아내고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생일 케이크의 한 조각을 냉동실에 얼려두듯, 이 순간의 냉동하고 싶다. 그리고 전하고 싶다.


머릿속에 맺힌 문장들을 스토리에 새겨두기도 한다. 내 머릿속의 타자기는 모음과 자음이 쏟아진다. 알곡처럼 흩어진 활자들을 모아서 문장을 만든다. (때로, 어떤 말도 되지 못한 단어들이 밟혀 아프지만) 점심시간, 월드컵공원을 산책하며 구름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봄의 얼굴을 발견하고서 차라락 문장이 조립된다. 빵처럼 부푼 구름 사진에 문장을 새겨넣는다.




‘계절의 챕터가 바뀌는 게 보이는 하늘. 겨울의 모퉁이로 봄의 옷자락이 삐죽 보여서,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친구를 보듯 사랑스럽다.’



두둥실 띄운 스토리, 이로써 누군가와 나는 같은 하늘을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된다. 내가 본 하늘의 사랑스러움이 토독, 누군가의 엄지에 닿는다.하지만 굳이 누군가의 감상이 알고 싶지는 않다.현수막에 코멘트를 다는 사람은 없듯 상대방도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그저 말없이 같은 것을 본다. 내가 느끼는 좋음을 보여주면서 구태여 대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나의 디지털 현수막 ‘인스타 스토리’의 큰 장점이다.


 답을 바라지 않고 쏟아내는 나의 순간과 기대 없이 쏟아지는 타인의 순간들이 담긴 스토리는 꼭 국도변의 현수막같다. 수신자도 발신자도 산뜻하게 토독토독 지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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