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우 Mar 12. 2024

가난을 칸타빌레

가난 속에서 명랑함 찾기 


블루칼라 노동자 집안의 첫번째 고학력자. 이슬아 작가와 나의 공통점이다.


블루칼라 노동자인 부모 아래서 가난의 파도에 찰박찰박 발을 담근 어린시절을 보낸 나에게, 그녀가 가난과 노동을 유쾌하고 산뜻하게 말하는게 신기했다. 유쾌하고 산뜻하게 표현한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내게 가난은 모래폭풍 속에 사는 일이다. 마시는 물에도, 덮는 이불에도, 닿은 창틀에도 모래가 버석거린다. 가난하다는 건 모래폭풍 속에 사는 일이다. 마시는 물, 덮는 이불, 올려다보는 하늘 모든 곳에서 가난이 버석인다. 가난은 불가피하다. 내가 마시는 물은 탁하고, 덮은 이불은 까끌거리고, 내가 볼 수 있는 건 뿌연 하늘 뿐이다. 가난하다는 건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나는 가난한 어린이에서 가난한 청소년기를 지나, 간신히 가난한의 '가' 정도를 떼어내는 어른으로 가는 길이다.


가난한 부모를, 그들의 고단한 노동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슬아 작가의 눈길이 신기했다. 우리가족 역시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쳤으나, 가난은 사랑보다 약해서. 가난 앞에서 사랑은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배운 생계의 책임감…명랑하고 회복력 있는 글 쓰고 싶다. 엄마는 식당, 마트 종업원 등을 하셨고 아버지도 공사 현장 노동이나 산업잠수사 같은 힘든 일을 계속 바꿔가며 하셨다. 생계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배웠다고 할까.” 라고 말하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를 보며 가난에 대한 관점의 차이, 회복력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느꼈다.


나에게 블루칼라 노동은 노역 같고, 그래서 반드시 다른 삶을 살겠다는 향상심은 배웠다. 거기엔 명랑함이나 회복력은 없었다. 생계는 버거운 것, 책임이 아니라 부채.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가난한 어린이였던 나를 따라가지 못했던 진도를 나머지 공부하는 느낌으로. 전시회, 쇼핑을, 여행을 다녔다. 이국에서 온 이름들을 많이 알면 나도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될까봐.


가난한 시절에도 아름다움과 명랑함을 찾는 이슬아 작가의 시선이, 내게 큰 충격이자 위로가 되었다. 가난한 아이가 나 뿐은 아니구나, 가난이 부끄러운 건 아니구나, 나 가난을 숨기느라 외로웠구나. 노래하듯 가난을 명랑하게 말하는 그녀의 글이 가난한 아이였던 나를, 노래하는 아이로 바꾸어주었다.



이전 07화 토독토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