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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 Feb 29. 2024

빛과 어둠의 사이에서

영화 <파묘>




1. 김고은의 르메르 착장이 '직업인으로서의 무당'을 완성한다. 르메르 옷이 흐르는 라인이 한복과도 비슷하다. 



2. 


사람들은 빛에 비쳐 보이는 것만 믿지만 사실 어둠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귀신, 악마, 요괴, 도깨비 여러가지로 불리는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오고 싶어하지만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편법을 써서 빛의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빛과 어둠, 과학과 미신 그 사이에 있는 나를 찾는다. 나는 무당 이화림이다. - 영화 <파묘> 



한국인이라면 피가 끓을 수 밖에 없는 무속신앙을 명쾌하게 설명하며 극은 시작한다. 과학과 미신 사이의 어떤 것이라도 찾기 위해 점집을 찾거나 그 앞을 서성거려본 경험은 공통적일테니까. 눈을 뜨면 대패톱날이 덮치는 것 같았던 시절에, 나도 몇 번이고 그런 것들을 찾았다. 


요 며칠 점집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우리 엄마는 소문난 사주 매니아인데, 어렸을 땐 그게 이해가 안갔다. 운명은 내가 노력해서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힘으로 인생을 바꿀 여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삼십대의 엄마가 기댈 곳은 어떤 신묘한 힘과 해석 뿐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나도 그렇다. 어떤 거대한 것에 기대고 싶다. 모든 것이 왜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다. 전생의 나를 원망하고, 억겁의 세월을 참회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선고라도 받아야 후련할 것 같다. - 2019.09.08 





모든 것이 이렇게 된 이유라도 알고 싶고, 차라리 이 삶이 어떤 죄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란 계시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것에 굴종하고 싶은 마음, 그건 두려움이자 동시에 위안이다. 


밑도 끝도 없는 부자인 의뢰인이 무당 화림을 찾은 것은 나와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화림을 만난 의뢰인 박지용의 태도에서는 칠흑같은 어둠을 겪어보지 않은 자, 언제나 환한 곳에 머무르며 산 자의 자만이 보인다. 지금 비록 어둠이 드리웠으나, 곧 당연한 듯 빛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 태도다. 



그렇게 빛의 세계에 사는 사람도,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도 무당을 찾는다. 



3. 



관을 매장하고 상여를 메는 전통 장례식은 20여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다. 나의 할아버지가 환갑도 되기 전 돌연 돌아가셨을 때, 시골집에 빈소가 차려졌다. 집성촌의 문중 사람들이 상여를 짊어지고 선산을 올랐다. 흩날리던 종이꽃, 의미를 알 수 없던 만가의 곡조, 우뚝 솟은 상여와 유독 푸른 하늘이 어린 내 눈에는 가을운동회 같았던 단편적인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런 한국 전통 장례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파묘>를 볼 때 더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  나와 피를 공유하는 수많은 혈족이 묻힌 산. 한 때는 나와 같이 뜨거운 핏줄이 흘렀을 그들이 흙으로 돌아가버린 산. 지금에야 문중 누구도 관리하기 버거워 잊혀진 그 산.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던데, 그들인 이 모든 것을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한국인에게 피를 나눈 가족과 한 산에 묻힌 다는 의미를, 좋은 자리에 묻힌 혈족이 나를 돌보아준다는 믿음을.



4. 


한반도의 척추에 꽂힌 쇠말뚝인, 다이묘를 없애려고 지관이 결단을 내리는 부분은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이 땅,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땅' 이기 때문에? 지관에게 다가오는 땅의 중요성이나, '좋은 땅'의 의미가 나에겐 충분히 납득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딸 결혼식을 앞두고서, 지관인 동시에 한 소시민이 목숨을 걸고 일본 요괴를 잡으러 간다고? 약간 국뽕이나 K-감수성이 범하는 비약으로 보여서 그 부분에 좀 흠칫했다. 



5. 


하지만, 그런 설명이 부족한 대신 영화는 아주 깔끔하고 명쾌하게 진행된다. 구구절절 어떤 사연인지 인물들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각이 '현재' 어떤 인물인지 디테일로써 충분히 보여준다. 화림의 착장, 봉길의 문신, 상덕의 등산화, 영근의 기도문. 영리한 영화다.



6. 


이야기를 풀고 나가는 힘이 훌륭하다. 


간을 빼먹고 사람을 해치는 오니의 소행은, 반달가슴곰을 포획함으로써 사람들이 납득가능한 사고로 변한다. 믿고싶은 것을 믿고 싶은 만큼 사실이 된다. 



7. 


잘 만든 영화! 무당과 지관, 장의사를 이야기의 도구가 아니라 '직업적 관점'에서 보여주는 전략이 좋았다. 느끼하지 않아서. 빛과 어둠 중간의 있는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업을 수행해나가는지 담백하게 그려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오니가 나오고, 혼령이 나오고 해도 납득이 간다. 그걸 다루는 직업인들이 이토록 진지하다면, 귀신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으랴? 하고 납득해버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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