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유료다.
2014년 겨울부터 2015년 겨울까지 통장 학살극이 이어졌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통장들의 명복을 빌며.
양재천이 잘 보이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스물일곱 살. 처음으로 ‘급여통장’이란 것이 생기고, 매월 20일이면 꽤 만족스러운 월급이 꽂혔다. 긴 연애의 끝과 첫 사회생활의 시작, 어디에도 마음은 자리 잡지 못했다. 불안은 마땅한 값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겨울왕국처럼 마음속의 한기가 쩌저적 소리를 내며 온몸을 얼려갔다. 책을 불태워 온기를 찾는 영화 ‘투모로우’ 속 인물들처럼 통장을 불태워서 온기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불씨를 품고 강남 신세계 백화점을 떠돌았다. 매일 퇴근길, 회색 코트를 입고 호박 마차에 올라타듯 가뿐하게 고속터미널에서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춤을 추듯이 지하 푸드코트부터 1층 화장품, 2층 여성복, 꼭대기층의 행사장까지 돌아다녔다. 빨간 구두 대신 얼마든지 긁을 수 있는 카드가 나를 춤추게 했다. 윤기 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아귀 같은 불안은 잠시 잠들었다. 잘 정돈된 쇼케이스들을 보고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저녁 7시 50분 폐장 안내 방송이 흘러나올 때까지 머플러, 가디건, 귀걸이, 가방, 원피스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필요나 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새것이라는 것, 새것은 아직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물건을 쥐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쇼핑백을 추처럼 달면, 바닥에 조금이라도 붙어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호선을 타고 다시 6호선을 타고, 응암동의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쇼핑백이 몇 개씩 들려있었다. 혼자 집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면, 물건과의 하룻밤에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수 있었다. 쇼핑백이 무겁지 않았는데, 백화점에 있을 때와 다르게 발을 끌며 걸었다.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숨이 꼴딱 넘어갈 만큼 멀었다. 윤기 나지 않는 방으로 돌아왔다. 백화점 쇼핑백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신발만 벗고 현관에 한참 앉아있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자꾸자꾸 몸에 한기가 퍼졌다. 쩌저적, 냉기가 뻗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들고 온 물건들은 더 이상 윤이 나지 않았다. 꺼져버린 성냥처럼, 어둡고 차가운 방에 놓인 물건들은 백화점에 있을 때와 달리 아무런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쇼핑을 하기 위해, 카드값을 갚기 위해, 학살할 통장을 채우기 위해 매일 성실하게 출근했다. 그게 마지막 남은 안전로프였다. 카드값이 월급을 넘어섰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내일 내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는 게 나으니까. 돈은 내가 외로움에 치르는 대가 중 가장 손쉽고 값싼 것이었다.
마이너스 뒤로 숫자가 불어나는 통장 잔고와 채 100일을 살아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적금 통장이 무섭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살아있지 않은가. 물건은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하지만, 버틸 수 있게 했다. 쇼핑은 내가 만드는 기대감, 스스로 선고하는 집행 유예, 작은 온기라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 집에 올 택배, 내일 입고 나갈 옷에 대한 기대라도 있어야 하루 더 사는 인간도 있다. 그게 나였다. 매일 물건과 원나잇 하는 통에 통장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마이너스를 찍은 통장잔고보다 내 마음은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2016년을 시작하는 첫날, 2년 차 성과급으로 받은 돈으로 간신히 마이너스(-)를 뗐다. 집과 연인을 바꾸며, 통장 속 아귀는 잠시 입을 닫았다.
길고 긴 통장 학살극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