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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작가 Sep 01. 2022

중간 관리자 수난의 시대

관리하거나, 관리당하거나

어디선가 이런 내용의 글을 보았다.


기업들은 효율과 수축의 시대 흐름에 맞게 조직을 개편했고, 그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전의 기업들은 사원부터 윗대가리까지 직급이 확실한 피라미드형 구조였다.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 등등의 피라미드 직제.


그런데 요즘은 그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기업들이 머리를 썼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기존의 수직 직제에서는 인건비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 직급에 따라 처우의 차등이 확실했다.


요즘의 기업들은 피라미드에서 탈피해 나가고 있다. 삼성 같은 대기업만 하더라도, 확실한 윗대가리 몇몇만 남기고 거의 프로화를 시켰다. 이렇게 되면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등이 프로로 한데 묶여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이른바, '전 직원의 X밥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같은 프로라도 연차에 따라 처우의 차등이 있겠지만, 중견기업 이하로는 관리자 정도를 빼고 나머지 80%의 직원들을 프로화라는 미명 하에 전부 X밥 대우를 할 수 있으니 아주 땡큐 베리 마치가 아닐 수 없다.


업무 측면에서는 1명의 관리자와 다수의 퍼포먼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1명의 관리자가 되었다. 총관리자도 아닌 모호한 중간 관리자. 그리고 내 아래에는 직급이 없는 6명의 프로들이 있다. 6명 중 4명은 일반 에디터이고, 2명은 디자이너이다. 그 2명 중 1명은 또 디자인 팀장이다.


나는 디자인에 관해서 아주 문외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매거진을 총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기껏 2명 있는 디자인 파트의 팀장을 매달 쫀다(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그 디자인 팀장 후배는 유명무실에 가까운 팀장을 하기 싫다고 하소연한다. 이전 직제에서 생겨 버린 팀장 꼬리표를 떼어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2년 전의 우리는 1명의 편집장 아래 1명의 취재팀장이 있었고, 1명의 디자인팀장이 있었으며, 1명의 전략기획팀장인가 뭔가가 하나 있었다(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취재기자(또는 에디터) 4명, 디자인 사원 1명까지 총 9명인 아주 아담한 구조였고, 관리나 영업 등 다른 부서와 대표까지 포함하면 12명 정도가 하나의 조직을 이뤘다. 관리부장 1명, 영업이사 1명, 대표 1명은 편집장보다 위계가 높았다.


사내 서열 4위이지만, 편집부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자랑했던 전 편집장은 휘하에 있는 3명의 팀장을 두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든든하다고 했다. 대체 뭐가 든든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편집부 9명 중 4명이 팀장급인 구조가 이상하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내가 편집장이 되면서 개편한 게 바로 지금의 체제인 것이다. 디자인 팀장 직급만큼은 폐지하지 못했지만, 나머지는 다 바꿨다. 편집장 1명, 에디터 5명(수석기자 1명 포함), 디자인 팀장 포함 디자이너 2명 총 8명으로 편집부는 재탄생했다.


취재팀장 직을 없애자는 데 중지가 모이긴 했으나, 막상 그 직급이 없어지면서 후배들이 받을 피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나, 가슴으로는 그렇지 않은. 취재팀장 직급이 없어진다면,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금이나마 더 대접받을 명문이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 개편의 의견을 합리적이고 용기 있게 표출해 준 후배들이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 짠하기도 하다.


이제 편집장은 6명의 사원을 동등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소위 팀장이라고 하는 중간급 관리자들이 싹 사라지면서, 총책과 중간 관리의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여기에 회사는 더 좁아진 사옥을 이유로 탄력 근무제를 요구했다. 그래서 한 달 중 절반 이상은 재택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아웃풋으로 말하는 직업이라지만, 관리의 고충이 없을 수가 없다. 편집장이 디렉션을 주거나, 부서 내 혹은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업무에서 재택은 아무래도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카오 워크나 구글 드라이브 등 보조재를 활용하기는 해도, 보조재는 역시 보조재란 생각이다. (아니면 나도 이젠 옛날 사람이 되어 신문명을 억셉하지 못하는 건인지도 모르겠다)


직제가 바뀌면서 가장 슬픈 건 후배들에게 밟아야 할 사다리 한 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취재팀장이 있을 때는 그래도 한 칸 올라갈 사다리가 있었다. 감투 하나 썼다고 해봤자 쥐꼬리만 한 월급이 고양이 꼬리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은 볼 수 있을 법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졌다. 이제 후배들은 편집장이 되는 것 말고는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술 김에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 '내가 이사든 뭐든 뭐라도 되어야 니들이 올라가지.' 심지어 한 선배는 이랬다. '아무개야, 우리가 그만둘 때가 되었나 보다.' 9년을 같이 개고생 했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같이 온 동료에게 그런 류의 말을 듣는 건 왠지 모르게 저릿하다.


그래서 요새는 글쟁이고 나발이고 하는 똥 자존심 다 내려놓고 영업맨의 마음으로 돈 끌어오기에 여념이 없다. 선배는 '너 그러다 커리어 끊길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생활이 어려워서 그러는 거냐' 등등의 우려를 내게 표해 보지만, 이유는 그거 하나뿐이다. 우리가 모두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 하나는 폭풍우 속의 조종 칸을 정신줄 잡고 잡아내야 하는데, 그 사선에 무조건 1명은 서야 한다면 그건 바로 나라는 거. 그 정도의 위기감은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좋아하는 일만 고집하는 건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다소 유치해 보인다. 그것은 사선에 서보지 못한, 벼랑 끝에 몰려 보지 못한 이들의 안도감 따위나 다름이 없다. 울타리 안에서는 태풍을 감지할 수 없다. 울타리를 열고 바람을 직면해야 한다.


그리하여 요샌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라고 표현한 건, 내가 편집장이랍시고 모든 부문에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후배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후배들 개개인의 역량을 신뢰했고, 후배들은 그 신뢰에 듬직하게 보답하고 있다.



전적으로 퍼포먼서의 위치가 된 중간급 후배들에게 특히 미안함이 크다. 야전에서 같이 병장과 일병으로 구르다가, 병장이 이계급 특해 중사가 된 뒤 상병 후배를 관리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후배의 박탈감과 상실감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고단함과 섭섭함, 나아가 괴리감을 느낄 것 같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3년 차 막내부터 7~8년 차 선임급까지 오와 열을 맞춰 줄 세우고 실적을 까발리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가장 극혐하는 행동이었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그리고 연차에 맞게 처우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상실하는 동력을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그런 짓을 해버렸다. 서로 입장을 바꿔 내가 그 위치였더라도 자존심이 상했을 거다.


이 시대의 중간 관리자로 산다는 건, 여러 모로 지친 일이다. 회사이기 때문에 관리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다 보면 전과 같은 인간적 유대 관계에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데, 때로는 지나치게 팩트 위주의 성과주의 잣대를 건네는 내 모습을 돌이키면 스스로에 대한 환멸까지 저며 든다. 가을 초입에 서리는 밤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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