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세대
꼰대가 되어 버린 걸까.
MZ세대지만 MZ세대의 행태들이 거슬릴 때가 솔직히 더러 있다.
지나간 일들을 곱씹어 보면, 단순히 불편하다는 차원의 감정은 아니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느끼는 감정들. 그것들로 말미암아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업무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관리자의 전화를 받지 않는 MZ세대의 직원들.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가 된다고 치자. 비업무 시간을 침범한 건 상사로서도 배려심은 없던 행동이니까. 그런데 폰에 콜이 찍혔을 텐데 다음날이라도 '선배 혹시 어제 전화 주셨었나요? 제가 저녁에 운동을 하고 있어서 받지 못했는데, 연락을 드리려고 했던 걸 깜박했네요 ㅠㅠ'라는 연락(유선이든 카톡이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한 통이 그렇게 어렵고 불편했던 걸까.
물론 최근 퍼포먼스가 떨어졌기에 특별히 관리하던 후배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어제는 그 일로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용돈이라도 벌라고 소소한 알바거리 하나를 소개해 주려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연락은 없다.
이런 일들이 비단 이번에만 있던 일은 아니었다. 우리 조직은 편집부 전원이 MZ세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MZ세대 후배는 유독 개인주의가 심한 아이다. 자기만의 영역이 확실하고, 그 영역을 침범받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 성향이다. 대신 사무실 출근일에 절대 지각 따윈 하지 않고, 회사문을 열면 언제나 일등으로 와있는 아주 성실한 친구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똘똘한 편이지만, 트래픽 측면에서 퍼포먼스는 하위권이고 감정에 따른 기복이 심해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관리자로서 디렉션과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좋게 해석하면, 그리고 잘 이끌면 장점을 잘 살려낼 수 있는 친구인데, 다만 이번 사건처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이 연락을 하면 어떤 형태로든 답장을 하는 것이 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예의라고 본다(이 주장도 꼰대라고 한다면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게 가족, 친구 등 사적 관계가 아닌 공적 관계라면 더더욱 말이다.
한 번은 사무실 야근 때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 시끄럽게 화상 통화를 하길래 열일하던 바로 옆 관리부 직원 분(우리 회사는 2개 법인이 개인 좌석이 없는 한 층의 코워크 테이블을 함께 쓰고, 디자이너 등 특수직만이 개인 자리가 있다)께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어 후배더러 전화방에서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더니 본인도 그제야 의식했다는 듯, 주섬주섬 무릎 담요를 챙기고 전화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도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와이프에게 혼도 많이 난다. 그래도 그렇게 받는 혼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혼을 받는 과정에서 자존심만 셌던 과거의 에고가 조금씩 희석되고 그나마 인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와이프에게 고맙다(물론 혼은 여전히 받기가 싫고, 고맙다는 표현은 여전히 서툴다).
후배를 보면 그 나이 때의 내 생각이 나서 안타까움이 앞서면서 측은지심까지 든다. 상사로서 기본적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시간이 흐르고 그 화가 가라앉아 지금은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이런 걸로 후배에게 잔소리하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이미 어린이집 수준에서 마쳐야 할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왜 직장에서까지 해줘야 하자'라는 생각에 현타가 온다. 아직 잔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업계 특성상 전 사원이 프로가 아닌 선후배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그런 피드백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기는 하다. 다만 이런 걸 그 후배의 또 다른 선배들은 할 생각이 없으니 결국 악역을 맡는 쪽은 나이며(냉정히 말해 이것은 사실 편집장 예하의 에디터들은 선후배이기는 해도 사실상 직급상 서로 프로나 다름없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모든 원망의 방향은 나를 향하겠다는 것도 직감하고 있다.
그래도 기본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변치 않다. 여기에 더해 그런 태도에 대한 피드백이 선배, 또는 관리자로서 꼭 해야 한다는 의무와 사명감(?)도 갖고 있다. 선후배로 엮여 있는 문화라면, 선배는 선배 저마다의 역할과 의무와 기능이 있고, 후배는 후배 저마다의 그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이걸 인정하지 않는 구성원은 선후배 호칭 다 떼고 누구누구 씨 이러면 된다)
우리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아니기에, 다수의 직원을 프로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상술하였듯 업계 문화라는 게 있는데 우리만 유별나게 프로화를 해버리면 회사 밖의 타사 선후배끼리는 자연스레 족보가 꼬여 버리게 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선후배 생태계에서 우리 구성원들은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함없는 전제하에서 꼰대스러운 얘기긴 해도 선배는 선배다워야 하고 후배는 후배다워야 하는 것이다.
재택근무는 무척 편리하고 나 역시도 선호하지만, MZ세대를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 대단히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예하 관리 인원이 많지는 않아도 개개인을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며, 와중에 피드백도 적시적소에 해줘야 하는데 업무 시간을 조금만 오버하면 전화를 받지 않으니 곤란한 일이 생긴다(심지어 이슈가 터지면 대응해야 하는 직업이라 업무 시간에 대한 대승적 차원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함에도).
기본만 지켰어도 하지 않았을 넋두리가 길어졌다. 브런치 글감 소재는 늘어서 좋네. 이렇게 하나하나 스트레스를 브런치 글로 승화시키다 보면 언젠가 'MZ세대가 온다'의 작가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을지 누가 알겠나. 요새는 이렇게 긍정 열매만 먹고 살아가는 게 MZ세대의 후배들과 함께하는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일종의 엔도르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