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노인회장 일만 25년, 박노일 어르신
박노일(42년생) 어르신은 충청북도 진천군 만생면 죽현리에서 태어나셨다. 스물네 살, 군에 입대해서 1967년 5월 6일 전역 후 파주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으셨던 건지, 갈 곳이 없어 파주에 살게 됐다고 하셨다.
“파주에서 고생고생하다가 옛날에 미군부대가 있었을 때 ‘KC(건설 관련한 일)’를 모집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추진하는 양반이 일자리를 줄 테니 한 달 월급을 소개비로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승낙했어요. 거기서 3년 동안 근무하고 71년도 미군이 떠나는 바람에 퇴직했어요. 다시 살기 어려워서 고생고생하다가 85년 10월에 파주5리에 정착해 살면서 이사 온 지 5년 만에 이장이 됐어요. 그때만 해도 이장 경쟁률이 아주 치열했어요.”
박노일 어르신은 이장이 되자마자 반별로 반상회를 개최했다. 반장도 뽑고, 개발위원장도 뽑아서 함께 마을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노인정이 없었는데, 93년 3월에 파주읍에 신청해서 노인정 인가를 받았어요. 3,400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노인정 지을 땅이 없었어요. 옛날에 파주읍장을 지내신 권오운 씨를 찾아가서 노인정 부지 20평을 시사 받아서 건립했어요. 그런데 노인정을 건립하고 나니까 차지하고 있는 땅이 20평을 초과했어요. 옛날에 초상이 나면 행여를 메고 산소를 마련하면 돈이 나오는데 그걸 모금했어요. 초과한 20평을 추가로 매입해서 노인정을 건립했어요. 그런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파주시청 출입기자단에 ‘아무개 이장이 돈을 다 떼어먹었다’라고 해서 그걸 증명하느라 애먹었어요. 결국 그 사람이 무릎 꿇고 사죄하고, 이사를 가라고 하면 가겠다고 했어요. 그때 참 제일 어려웠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참 난감했었어요.”
박노일 어르신은 없던 돈까지 마련해서 노인정을 건립한다고 애를 썼는데 괜한 오해를 받았던 기억이 한으로 남으셨는지 한숨을 푹푹 쉬시면서 말씀하셨다.
“2000년대 들어서 파주5리에 빈집이 많이 늘어나고, 동네가 낙후되어서 무척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황규임 이장과 정문갑 노인회장이 혼연일체가 돼서 시청이며 경기도며 뛰어다니면서 상상도 못 했던 일을 하고 있어요. 비어 있던 마을회관에 파파스(TV) 방송국이 들어오고, 아이돌봄(공동체), 행복마을(관리소) 등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이 양반들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장이나 노인회장을 위기로 파주5리 주민이 혼연일체가 된다면 예전처럼 마을이 발전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어요.”
열정 만수르 정문갑 회장님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질문하셨다. “마을주민들이 혼연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박노일 어르신은 그리운 듯 옛날이야기를 꺼내셨다.
“마을회관에서 결혼식, 피로연, 회갑연 같은 잔치를 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주민들이 나와서 일을 도와주고 같이 손잡고 일했어요. 세월이 변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마을에 살지 않고, 밖으로 다 나가 살면서 마을엔 70대 이상 노인들만 살게 됐어요. 그래도 젊은 60대 후반 70대 초반 사람들이 몇 명 있으니까 노인회장이랑 이장이 그 양반들이랑 합심하면 파주5리가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박노일 어르신이 가슴속 한으로 남았던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 시원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마을방송국이 어쩌면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코너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마을회관, 노인정 건립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마을회관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의 활동과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