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운전사 한 달 월급 기부”

김봉우 파주5리 마을회관 건축위원장

by 이유 임민아

파주5리 마을회관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정문갑 노인회장님과 함께 진행하는 ‘라떼는 말이야’ 첫 번째 손님으로 ‘봉우농장’ 김봉우(42년생) 어르신을 스튜디오에 모셨다. 김봉우 어르신은 파주5리 마을회관 건축위원장으로 봉사하셨던 분이다.


인터뷰할 당시 연세가 80세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농장에서 직접 사과 농사를 지으실 정도로 정정하셨다. 파주읍에서 태어나 6.25 전쟁 당시 피난 생활 3년, 군대 생활 3년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줄곧 이 마을에 살아오셨다.


1970년대 파주읍엔 결혼식, 회갑연 등 동네잔치를 할만한 공간이 없었다. 마을회관이 있으면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마을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많은 주민들이 군부대 철수로 인해 퇴직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마을회관을 건립하자고 횃불을 들었는데 반대가 심했어요. 우선 마을회관을 지을만한 터가 없었는데,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덕수물산 김 회장을 만나서 간곡하게 마을회관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협조해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지도를 펴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는데 솔직한 얘기로 다 달라는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마을회관 지을 80평 정도만 양도해달라고 했는데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대지를 확보했어요.”


부지를 확보했으니 이제 건축만 남았는데, 어려운 일이란 걸 알고는 다들 추진위원장을 사양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김봉우 어르신이 추진위원장을 맡아서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친목회를 조직해서 1인당 9만 원 정도 자금을 모아둔 게 있었어요. 그걸 우선 마을회관 건립에 쓰자고 했더니 살인이 나겠다 싶은 정도로 반대가 심했어요. 회의를 수십 번 하고,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막걸리를 수도 없이 샀어요. 20일 정도 그렇게 설득했더니 2/3 정도 동의를 해주더라고요.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분을 돌려주겠다고 했죠.”


마을주민들 마음을 그렇게 어렵사리 모아가고 있었는데, 행정에서는 주민들의 이런 움직임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마을회관을 짓겠다는 거냐?’고 반문하면서 비아냥거렸던 모양이다. 그때 장면이 떠오르시는지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지셨다.


“자금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추진하다가 안 되면 내 땅이라도 팔아서 자금을 내놓을 테니 해보자고 말했어요. 새마을운동을 할 때니까 모두 나와서 함께 일하자고 했는데, 바쁘다고 가고, 아프다고 안 나오고 그래서 일이 안 되는 거예요. 하루는 내가 점심을 낼 테니 가지 말라고 하고 아주 푸짐하게 내놨어요. 막걸리도 사 오고, 김치찌개 끓여서 밥을 다 같이 먹어가며 일했어요.”

일할 사람들은 모았는데, 결국 또 자금이 발목을 잡았다. 그때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 게 통했다. 마을 입구에 대형 현황판을 내다 걸었다.


“자금을 모으려고 동네 사람들 다 찾아다니면서 설득을 했어요. 현황판을 작업 현장에 하나, 이장님 댁 앞에 하나 걸었어요. ‘마을회관을 짓기 위한 일이니,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써놓고 매일매일 ‘오늘 협조하신 분’이라고 이름을 적어 올렸어요. 한두 분 적을 때까지 조용하다가, 열 명 이상 되니까 참여하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더라고요. 결국은 동네에서 참여 안 하는 분들이 무색할 정도가 됐어요. 친목회에서 빠져나간 열 명 중에 일곱 명은 ‘내가 미안했다’라고 하면서 지분을 도로 내놓더라고요.”


김봉우 어르신 이야기를 듣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떻게 현황판을 걸어서 후원하신 분들 이름을 적어 올릴 생각을 하셨을까? 나라도 당장 지갑을 열었을 거다.


“협조 안 하신 분들도 찾아다니면서 구경 오시라고 하고, 막걸리도 한잔하시라고 그랬더니 마을회관 건축 현장에 매일 100여 명이 들끓었어요. 당시 우리 동네가 얼마나 단결이 잘됐는지, 다른 마을에서 ‘파주5리 무섭다’라고 할 정도로 남녀노소 총동원됐어요.”

1983년 4월, 드디어 파주5리 마을회관 준공! 김봉우 어르신은 준공하면서 ‘이것만은 꼭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신 게 있었다. 바로 현황판에 적혀 있던 이름을 멋지게 나무현판으로 제작해서 마을회관 입구에 거는 것이었다.


“서영경이라고 버스운전사가 있었어요. 당시에 그분 한 달 월급이 45만 원이었어요. ‘나는 그동안 마을에 살면서 협조한 게 없는데, 마을에서 이렇게 나서서 마을회관을 짓는다고 하니까 월급 탄 걸 다 내놓겠다’라고 하면서 한 달 월급을 다 내놓으셨어요. 이용화 씨라는 분은 돌아가셨는데, 돈이 없으니까 농협에서 대출받아서 10만 원을 내주셨어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고, 먹을 걸 내놓으면서 파주5리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 주민들이 서로 먹을 걸 가져오는 바람에 커피, 샌드위치, 막걸리 등 순번을 정해줘야 할 정도로 음식이 풍성했다.


“파주5리가 살만하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는데, 다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김봉우 어르신은 2021년 11월, 마을주민들과 십시일반 지어 올린 파주5리 마을회관에서 팔순 잔치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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