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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Dec 13. 2021

처음 마주했던 죽음을 기억하나요?

몰입형 챗봇 IT 서비스, 아포피스 제작 일기 #1


"만약 내가 7일 후에 죽는다면,
무슨 생각들을 하고, 남은 날동안 무엇을 하려 할까?"


이 생각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제가 팀원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IT 앱 서비스 '아포피스'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써 내려가는 삶의 마지막 대화, 아포피스.
아포피스는 "소행성 충돌로 인해 당신이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으로 하는 몰입형 챗봇 서비스입니다.
지금은 알파테스트 버전 서비스를 거쳐 리뉴얼을 하고 있으며, 베타 서비스 출시와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앞두고 있습니다.

리뉴얼 전의 디자인입니다. 해당 디자인은 모두 아포피스 디자인 팀의 작업물입니다.



과연 아포피스는 정말 IT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요? 저의 다소 괴상한, 소행성처럼 날아온, 꿈만 같은 서비스인데 말이죠.

저는 지난 1년 간 아포피스라는 서비스를 총괄 프로덕트 매니저 겸 스토리 작가로서 아포피스를 만들었습니다. 아포피스의 항해는 이미 시작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설령 얼마 못가 멈춘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우주 속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실제의 아포피스처럼 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전문적인 서비스 기획 글이라기보다는, 아포피스를 제작하는 저의 일지 혹은 일기입니다. 서비스 시작부터 끝까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담겨있습니다만. 그저 즐겁게 봐주세요.



1. 아포피스의 시작, 지구를 언젠가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소행성의 이름.


2020년,
난 IT 서비스 기획 쪽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IT 분야 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힌 지 1년 반.

SOPT라는 IT벤처창업동아리를 2019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기획자로서 나의 생애 첫 IT기획 프로젝트를 했고, 이후 2020년 상반기에 SOPT라는 단체에 매료되어 26기의 회장을 했다.
(SOPT는 한 기수에 180명 정도로 운영되고 기획/디자인/개발 파트로 나눠진 국내 최대 규모 IT 창업 동아리이다.)


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전 세계에 유례없이 찾아온 위기 속에 대형 단체의 회장을 했었다.

정부의 지침조차 없을 때라 다사다난했지만 어찌어찌 잘 마친 후에, 이제는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생각으로 SOPT의 장기 해커톤인 앱 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동아리 SOPT에서 기획 파트는 기획 아이템을 들고나가서 기획자 경선에 나가서 PT를 한다. 그리고 투표를 진행하는데, 평균적으로 18명 정도의 사람이 지원해서 12명 정도의 기획자가 뽑힌다. 선발되면 디자이너 개발자 분들과 팀빌딩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후 10명 내외의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팀을 이뤄 3주 동안 앱을 구현한다.)


모든 기획이 그렇듯이, 서비스 기획도 아이데이션부터 시작한다.
가장 처음 씨앗을 펼쳐 튼튼한 씨앗을 골라내는 과정.
나는 평소에 이런저런 엉뚱한 공상, 망상을 많이 하고 온갖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서비스 기획 과정에서 아이데이션을 가장 좋아했다. 생각의 발산. 이런저런 잡다한 아이디어들을 늘어놓는 건 나에게는 가장 즐겁고도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 심신이 지쳐서 그런 건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아이템을 하면 정말 나 자신이 근원적으로 만족을 할 수 있을까?
돈이라든가 비즈니스 모델을 신경 쓰지 않는 않는 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이는 나중에 큰 파국을 불러오지만 이 때는 그랬다.)
나중에는 하기 싫어도 돈에 연연할 텐데 지금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안 되나?

학생 때만 해볼 수 있는 도전적인, 내가 진정으로 나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내 가치를 담은 서비스를 해보자. 그런데 뭘 할 수 있지?




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A라고 명명하겠다. (친구B, C도 이후에 나오기 때문에.)
그 친구를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죽도록 대화를 하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말로써 강하게 묶여있던 사이였다. 온갖 잡다한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했던 것 같다. 산책을 하면서, 술을 마시면서, 새벽 한강을 걸으면서. 세상 저 끝에 있을만한 이상하고 심오한 이야기들은 모두 끌어와 수다를 떨었다. 철학부터 사이비스러운 양자물리학 등등. 마치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조하는 듯한 건방진 태도로 밤새도록 떠들어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면 자유를 느꼈다. 엉뚱하고 이상해 보일까 봐 타인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던 나의 면들을 속박에서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친구가 이때쯤에 지나가듯 말했다. 

"그거 알아? 곧 소행성 지구 엄청 가까이 온다. 달이랑 지구 사이를 지나간대."

"진짜?"
"응. 그 소행성이 한 30년 후쯤에는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대. 원래 충돌 가능성이 굉장히 낮았는데. 나사에서 계산을 잘못했던 거야. 그래서 충돌 가능성이 확 올라갔어. 무슨 영화 같지 않아?"

그렇게 한 번 듣고 흘려보냈던,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 말.


기획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쉽게 풀리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잠깐 쉬려고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중에 그 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르자마자 그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뭐였더라? 아포피스라고 했었나?


출처:   https://phys.org/news/2020-11-apophis-asteroid-earth-thought.html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PIA23195-AsteroidApophis-ClosestApproachToEart



소행성 아포피스.

과거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지구를 스쳐 지나갔던 소행성.
지구와 비슷한 궤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10년에 한 번씩 지구를 굉장히 가깝게 거쳐간다.
2068년에는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나사의 발표와 함께, 
일론 머스크도 한 번 언급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꽤나 공공연해 보였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소행성 TOP 5 같은 랭킹쇼를 한다면 꼭 한자리 차지할 것 같은 그런 소행성이었다. 향후 미래 인류 생존의 위험 중 가장 유력한 요소 중 하나랄까.
이 시기쯤에 또 한 번 아포피스는 지구를 굉장히 가깝게 스쳐 지나갔었다.



이 기사를 보고, 특이하게도 난 과거 저 아래에 묵혀뒀던 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로 2012년 마야의 지구 멸망설을 진심으로 믿었던 나의 모습이었다.




2. 기저에 있던 나의 사적인 멸망의 경험을 떠올리다.


위에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다소 마이너하고, 표현하자면 심오하거나 엉뚱한 면이 있었다.
많은 과거 중 가장 손에 꼽는 흑역사(?)로는 2021년 지구 멸망설을 굳게 믿었다는 사실이 있다.
고등학생 때쯤, 나는 뭐하나 열심히 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삶에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리 행복하지 않은, 가감 없이 표현하자면 최악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심약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간이랄까.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불안도가 높았으며 현실감각이나 사회성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때쯤에 연일 북한이 미사일을 쏘겠다고 엄포를 놓는 기사가 쏟아졌는데, 언젠가 정말 전쟁을 하진 않을까 심각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야인이 예언했다는 2012년 지구 멸망설을 접하게 되었다.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짜.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고대 마야인이라고 하면 너무나 신묘하고 기묘해 보였다.
그런 그들이 지구 멸망을 예언을 했다면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또한 음모론을 전개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쓸데없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자신감에 차있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듯이 그것에 넘어갈 만큼 심신이 나약한 고딩이었다.

"아니 정말,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그걸 믿었어?"
라고 한다면 음... 할 말이 없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었는 걸....


18살이었던 나에게 정말 몇 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공포로 다가왔고.
매일 밤 두려워하며 울다가 지쳐 잠에 들었다. 대신 믿는다는 게 창피하긴 했는지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순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멸망이라니 너무 무서워'라고 생각하면서 끙끙 속앓이를 하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봐도
, 그 노력이 무색하게 사실 이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용기를 내서 엄마나 친구에게 말을 꺼냈을 때에는 뭐 그런 걸 믿냐며 비웃음을 당한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혼자 며칠을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에 시달리다 보니
사람이라는 게 감정에 너무 지쳐서 그 감정을 놓아버리게 되기도 했다.
그 불안과 공포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생생한 불안을 느끼기에도 에너지가 다 떨어졌을 무렵에서야,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 난 왜 이렇게까지 죽음을 무서워하지?


2012년 지구 멸망설은 꽤나 유명했어서 영화로도 나왔다.



난 왜 이렇게 죽음을 공포스러워하는지 골몰히 생각하다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사람은 사실 누구나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게 실감했다. 마치 수행자가 진리에 눈을 뜨듯이 죽음을 깨달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행성 충돌이든 뭐 마야인의 저주든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도 나는 몇 년 후에 급성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또는 당장 내일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
미래의 내 생존은 그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몇 개월 후로 예언된 지구 멸망을 무서워하고 불안 해할 것이라면, 사실 매일매일 당장 죽을까 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찾은 죽음의 공포가 내게 죽음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미래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워해 봤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2. 나는 지금 불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그렇게까지 죽음이 두려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불만족스럽게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때쯤에 나는 의욕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소심한 편에 무엇하나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하나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는 편도 아니었다. 내면에 희미할 정도로 작은 불씨의 열망을 품고는 있지만 그를 실행시킬 용기는 전무한, 한 마디로 무기력한 상태로 오래 지내왔다. 죽음을 앞에 두니 지금의 내 상태가 여실히 보였다. 몇 개월 후에 죽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지? 최악의 상태였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때보다 그를 깨닫고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어차피 2021년 12월 21일에 죽을 거라면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해. 밑져야 본전인데, 조금 더 살아보고 싶은 대로 살아보다가 죽자.

당시에 실제로 썼던 2012년 대비 버킷리스트 아직도 내 방 상자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


그 결론에 도달했을 때 


언제 사뒀는지 모를, 책장 어딘가 처박혀있던 손바닥 만한 노트를 펼쳤다.
나라는 사람은 뭘 하고 싶어 하고,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 막막함을 느끼다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는 싫어서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써 내려갔다. 일종의 버킷리스트였다.

좋아하던 락밴드 공연 가보기 / 화장하고 돌아다녀보기 / 반에서 몇 등 해보기....

종이에 직접 써보니,
삶에서 한 번쯤 꼭 하고 싶다는 말이 머쓱할 정도로 다소 유치하고 별 것 없는 버킷리스트 목록들이 있었다.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일단 해보지 뭐.




난 이후 3개월 동안 노트에 써 내려갔던 리스트를 모두 달성했다.
그리고 아직도 저 노트에는 꼭 가보고 싶었던 밴드의 공연에서 날리던 반짝이가 끼워져 있다.


그 3개월 동안. 막연한 공포보다 구체적으로 달성되는 일상들이 내 하루하루를 채웠고.

죽음은 나에게 역설적으로 살아갈 욕심, 의욕을 가져다주었다.
점점 멸망과 죽음이 덜 무서웠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살아있는 한 뭔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희미했던 불씨들이 모여 조금씩 커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 시간이 흘러 흘러 대망의 2012년 12월 21일이 되었다.
그날 핸드폰에 비치던 날짜와 시간을 기억한다.
2021.12.21
큰 동요 없이 날짜와 시간을 마주했다. 그때의 나에게 더 이상 멸망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 보장되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해졌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멸망도 하지 않았는데, 살아있는데, 뭔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 삶에서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매일은 아니어도 버킷리스트를 꼬박꼬박 작성했다.
사람은 무릇 죽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 매일을 죽기 전이라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바로 해치워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주저하고 망설일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기저에 있던 이때의 기억이 튀어나온다. 
다소 엉뚱하지만 내가 미리 경험했던 나의 죽음이 나에게 말을 건다. 넌 당장 내일도 죽을 수 있다고, 망설이지 말라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내 삶에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어,
혹시,
혹시 말이야,
어쩌면 이거 서비스로 풀어내 볼 수 있을까?


나와 아포피스의 첫 만남이었다.







<함께 써 내려가는 삶의 마지막 대화. 아포피스 제작 일기 시리즈>
아포피스 서비스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꽤나 수정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추가되는 포스트를 리스트로 정리해두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재밌게 읽으셨다면, 좋아요나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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