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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공 Apr 05. 2024

[노동 일기 #3] 빌런은 바로 너

폭력 쓸까?


사회에 나와보니 별별 인간이, 아니 빌런이 다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다가 막 열심히 하려는 내 주변으로 몰려든 건지.


첫 회사에선 작은 오타 하나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A가 있었다. 작은 사무실 한가운데 나를 세워두고 인격을 모독할 만큼 큰 실수는 아니었는데… A의 호출이 있을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그에게 ‘털리는’ 날이면 늘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그다음 회사에선 향수 한 통을 들이붓고 나오는 게 틀림없는 B가 있었다. 씻지는 않는지, 어깨엔 늘 흰 비듬이 소복했다. 일 떠넘기는 실력이 선수급이라,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밤을 새워가며 B의 업무를 대신했다.


여러 후배 앞에서 본인이 유흥주점에서 얼마나 문란하게 노는지 자랑하던 C도 스쳐 간다. 간만의 회식 자리에선 딸뻘 후배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누님들.” 하던 게 종종 생각나 기분이 더럽다.


D는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이유 없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즐겼다. 다행히(?) 내가 타깃인 적은 없으나, 나의 동기는 옷 스타일, 머리 스타일, 말투까지 늘 지적당했다. 어느 날은 노트북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는 이유로 “가방이 쓰레기냐”며 시비 당했고, 빈자리에 가방을 올려둔 날엔 “사무실이 네 집 안방이냐”며 혼이 났다. 같은 회사의 E는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흙을 뿌린 일화가 한동안 화두였다. (화분에 심겨 있던 나무를 뽑아 흔들었다는 소문이…)


F는 실행력 없이 말 더하기를 좋아했다. 그것을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해 심취하길 여러 날이었다. 게다가 근무시간 내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다. 동시에 아랫사람이 노는 꼴은 보지 못하는 병에 걸려 비즈니스 메일을 쓰는 시간까지 체크하곤 했다.


막냇동생뻘 인턴 G는 업무를 지시하면 “그래요~~”라고 답했다. H는 도대체 무슨 이유에선지 본인에 취해 사는 캐릭터였는데, 비난을 위한 비난을 즐겼다. 그것이 본인의 논리라고 생각했다. I는 매일 평균 20분 정도 지각을 하면서 퇴근은 칼같이 했다. 휴대폰을 이용해 출근 도장은 정각에 찍는 것이 코미디였다. (Z까지 세기 전에 은퇴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그날엔 작은 것에 예민한 나도 있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A의 말은 ‘응, 다음 개소리~’하고 흘려버리면 됐을지도 모른다. 씻지 않는 B를 두고는 ‘물 부족 국가에서 애국하네.’하며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글쎄, 사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 이제 와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겠지만.


아주 조금은 무던할 수 있는 나이와 연차가 됐다. 누군가의 냄새나 말투, 배우지 못한 개념 같은 것에 내 감정을 소모할 필요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유형의 빌런이다. 무능력자. (아무래도 현재 경험에 기인한…)


모든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직장인이 일을 잘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업무 능력 대신 사람을 잘 다룰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지만 운이 좋아 나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10여 년 차 타이틀을 달고 기본도 모를 거라면, 솔직하기라도 해야 한다. 겸손이라도 해야 한다. 어려운 단어를 섞어 쓰거나 목소리가 크면 들키지 않는다고 믿는 건, 닭이 대가리만 처박고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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