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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y 22. 2018

꼭 말을 놓아야 할까


“근데 너 왜 말 안 놔? 우리 같은 1학년인데.”
“어, 그… 먼저 놓으세요.”

“나 아까부터 놨잖아. 말 놓은 거 안 보여?”
“아….”

“너도 말 놔~”
“아, 예. 알았어요.”

“놓으라니까?”
“아? 놓을게요.”

“말 놓으라고!!”
“알았어요~ 놓으면 되잖아요.”

“아, 놓으라니까!?”
“아, 갑자기, 막, 놓으라고 하면, 제가 못 놔요.”

-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수지 분)과 승민(이제훈 분)의 대화 中


외부기관에서 실무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4주간 진행되었고 나를 비롯한 각 업체의 담당자가 참석했다. 늘 그렇듯 첫 대면은 어색했으나 수업이 시작되자 강사의 입담에 몇몇 얼굴이 웃음을 드러냈다. 귀갓길엔 명함을 주고받는 이들이 보였다. 첫 주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때쯤 누군가 회식을 제안했다. 4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였는데, 바빠서 염색을 할 시간이 없었는지 검은 머리카락의 뿌리 부근과 구레나룻이 회색빛이었다. 화려한 프린팅의 티셔츠와 하늘색 재킷은 그가 자유로운 회사의 직원이며, 직위가 높고 왠지 대범한 성격일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회식 자리가 무르익자 회색머리 아저씨는 자신의 나이가 나머지에 비해 월등히 많다며 말을 놓기 시작했다. 대범하고 재치 있는 모습 때문인지 그런 태도가 분위기를 해치진 않았다. 문제는 그가 다른 사람들도 서로 말을 놓게 한 것이다. 자신은 어른 놀이하기 싫다고, 각 자리에서 격식 차리고 힘주던 우리들인데 여기서라도 편하게 대하자고, 뭐 그렇게 친해지는 거 아니겠냐고.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홀려서인지 혹은 그들 역시 편한 관계를 원했는지 형님, 동생, 누님, 어이 친구, 하며 말을 놓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모나고 싶지 않아서 아직 얼굴 모양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했다. (사실 말 자체를 거의 못 했다.)


“주말 잘 보냈어?”

“아, 네. 안녕하세요.”

“아, 어, 안녕하… 말을 저번 주에 놓은 거 아니야, 요?”


주말이 지났고,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난 그가 디자이너이고, 남자이고, 그리고 또 그…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나이는 물론,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이니 자연스레 존대를 했고 우리는 둘 다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잇는 게 어려웠는지 ‘아, 그럼 오늘도 수고~’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인사를 건넨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 타인과 가까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


말을 놓는 것이 쉽지 않다. 언제 말을 놓아야 하는 것일까. 특히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2~30대부터는, 꼭 말을 놓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말을 쉽게 놓으며 성큼 다가서는 사람을 보면 붙임성이 좋다는 생각보다 경우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고 피하게 된다. 한 번은 나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슬쩍 말을 놓기에 나 역시 말을 놓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결국 놓지 못했다.)


소심인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말을 놓을지에 대한 고민은 관계 초반이 아닌 서로를 충분히 알고 난 후, 가령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후회하는 일 정도를 나눈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친해진 후에도 존대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면 그대로 유지하곤 한다. 관계 초반부터 서로를 알아보고 편하게 대하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연배에 별 차이가 없거나 동갑내기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놓아버리면 오히려 가까워지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말을 툭 놓으며 다가올 때는, 정신이 살짝 아득해지기도 한다.


다, 다가오지 마!  거기 서서 얘기해죠.



# 가까워지기 위해 말을 놓을 필요는 없다


상대를 높이는 표현은 모든 언어에 존재하지만, 문법적으로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그중에서도 특히 존대하는 표현이 잘 발달했는데, 윗사람을 존경하고 타인에 대한 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는 자연스레 존댓말을 사용한다. 반말과 구별되는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표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관계는 존대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예의를 차리는 사이’와 ‘가까운 사이’가 상충되는 듯한 인식이 존재한다. 존댓말은 관계 초반의 언어이니, 반말을 할 정도로 소위 격이 없어야 친한 사이 혹은 친해질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격格이 없는 사이’와 ‘격의隔意 없는 사이’는 엄연히 다르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은 후자이다.


• 격의: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


격이 없이 말을 놓아야 비로소 격의 없는 관계로 들어설 수 있다는 건 대범인의 문화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서로에 대한 격식을 차려 존댓말을 사용하면서도 격의를 꺼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대방과 단 둘이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 앞으로도 이 사람과 오랜 관계가 유지될 것 같은 예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들어보는 것, 그 과정에서 그의 성향과 태도를 존중하는 것, 조심스레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격의 없는 사이’로 가기 위한 소심인의 시간이다.


가까워지기 위해 말을 놓을 필요는 없다. 말을 놓은 사이가 가까운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관계의 거리가 멀든 가깝든, 내가 말을 놓기 어려운데 굳이 그 불편을 감수하며 관계의 물리적 거리를 좁힐 필요가 없다. 적어도 소심인에게는. 말을 놓아야 하는 시점이나 놓기 위한 시간을 따져보는 것, 놓아야 한다는 불편감 자체가 소심인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관계의 속도에 맞춰 말을 놓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괜찮다. 길게 뱉은 호흡을 머금은 민들레 씨앗이 상대의 몸에 날아가 붙고, 그 씨앗들이 꽃을 피우며 천천히 서로의 모양을 알아가는 것이 좋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가까울수록 상대에 대한 격을 지키는 것이 더 오랜 기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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