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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y 29. 2018

소심인이 행복을 다루는 방식


어느 모임의 MT.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펜션이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홀로 건물을 나왔다. 마침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덕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고요하다. 초저녁 서해의 짙은 바다와 듬성듬성한 섬들의 고즈넉한 산세가 만나 세상이 멈춘 듯 적막하다. 날이 어두워지며 눈앞의 풍경은 더 묵직해진다. 고요함이 깊어지니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그렇게 한동안 눈앞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혼자 왜 그러고 있어요?”


누군가 펜션 문을 열었다. 문 너머의 밝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문틈을 찢고 나와 적막을 깬다. 그는 내부와 상반되는 이곳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내 눈치를 한두 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냥 풍경이 좋아서 보고 있었다고 답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정말 아무 일이 없다면 왜 혼자 있냐’며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확신했다.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들어가서 즐겁게 놀자고, 그러다 보면 나아질 거라는 말을 더했다. 그 안의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꽤나 챙겨주고 있는 듯한 어투였다. 나는 이것저것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그를 따랐다.


다음 날, 이른 시각부터 눈이 뜨여 앞길을 거닐었다. 아직 쨍하지 않은 햇살을 받으며 고요한 산자락을 걷고 있으니 지난밤의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그쪽은 세 명이었는데 같은 모임의 구성원들이다. 인사를 했다. 그중 누군가가 지나며 농담인지 뭔지 모를 것을 던졌다.


“왜 아침부터 청승맞게 혼자 다녀요!”





# 행복의 유형


행복하길 원하면서 정작 내가 어떤 경험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는 깊이 고민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는 활동적인 사람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그런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는 조용히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행복에도 유형이 있다.


행복의 유형은 ‘쾌락적 행복’과 ‘자아실현적 행복’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고 한다. 쾌락적 행복은 심신의 최대 만족과 즐거움으로 정의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장면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따스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단잠을 청하는 것, 모두 쾌락적 행복에 해당한다.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 SWB’으로 달리 말할 수도 있으며, 이는 삶에 대한 만족이나 긍정적인 정서 수준과 비례한다. 고객에게 포악질을 당하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업무를 끝낸 고단한 저녁, 맘 맞는 누군가와의 치맥 한 잔으로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면 쾌락적 행복이 회복되는 셈이다. 한겨울 거센 바람 헤치고 들어와 뜨끈한 온수에 몸을 담글 때의 행복도 그렇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예매하고 팝콘을 사며 기다리는 시간도 역시, 쾌락적 행복이다. (용어 자체는 좀 직설적이지만)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행복감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자아실현적 행복은 삶의 의미와 자기실현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성, 개인적 성장, 자기 수용, 삶의 목표 등 좀 더 인생 전반에 대한 시각이 담긴다. 목표를 위해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이나 자신을 견뎌내는 것, 관계나 사건 속에서 의미를 찾게 되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경험의 반복을 통해 삶의 가치가 점진적으로 증가되는 것 등이 해당되며,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 PWB’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피곤함도 잊을 만큼 무언가에 열중했다면, 이 행복을 경험한 셈이다. 다른 목표가 생겨 회사를 그만두거나 안락한 현실에서 탈피하는 것, 시험의 합격을 위해 긴 시간을 견디는 것,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의 자신을 격려하는 것, 오늘도 실패한 스스로를 안아주는 것, 이 모든 것은 자아실현적 행복이다. 자신의 몸매 관리를 위해 삼시 세 끼를 닭가슴살만 먹는 친구가 안타까워 보였다면, 그 친구의 행복을 쾌락적 행복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실현적 행복을 겪고 있다.



# 행복을 느끼는 장면은 개인마다 다르다


우리의 삶은 이 두 가지 유형의 행복이 균형을 이루며 주요한 작용을 한다. 그런데 행복을 느끼는 장면은 개인마다 다르다. 심지어 동일한 상황을 경험하면서도 누군가는 쾌락적 행복으로, 다른 이는 자아실현적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펜션 내부의 경험은 나에게 쾌락적 행복보다는 자아실현적 행복에 가깝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가 삶에서 의미 있게 여기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참여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내 쾌락적 행복은 건물 앞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른 아침 오솔길을 걸으며 느끼는 고요함에서 완성된다. 그럼에도 나와 마주친 이들은 의아하게 물었다. 너 여기서 혼자 뭘 하느냐고.


행복 조건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대범인과 소심인은 행복을 느끼는 경험이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대인관계, 여가활동, 자기계발, 친사회적 활동, 종교 활동’ 등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대범인의 경우 행복감의 꽤 많은 영역을 대인관계나 친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얻는다. 이들은 대인관계를 통해 유쾌함, 황홀함, 애정, 자부심 등을 높게 경험한다. 그런데 소심인은 즐거운 관계보다는 덜 즐겁더라도 안락한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며 교감을 느끼는 상황을 선호한다. 나의 경우 이런 자리는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침묵이 얼마간 지속돼도 서로 불편해하지 않는 자리이다.


여가 활동에서도 행복의 조건은 달리 나타난다. 여가활동 전반에 대한 빈도수나 그로 인한 만족도는 대범인이 더 높지만, 신체/심리적 평안을 주는 정적인 활동에서는 소심인이 더 큰 빈도와 만족도를 경험한다. 자기계발의 경우도 마찬가지. 대범인은 ‘과제에 대한 수행활동’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특히 친사회적 상황에서 타인과 함께 수행한다거나 보상적 상황(경제적 보상, 과제로 인한 보상 등)이 주어질 때 더 높은 행복을 경험한다. 반면 소심인은 자신을 탐색하거나 성장시킬 수 있는,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더 선호한다. 보상이나 타인의 존재가 꼭 중요하진 않다. 두 성향은 정말이지, 행복의 조건이 다르다.


누군가 쓸쓸해보인다고 했던 이 사진이 나에겐 평온한 기분을 준다.



# 소심인이 행복을 다루는 방식


대범인이 경험하는 행복은 그것이 잘 드러나는 맥락이 많으며, 스스로 현재의 정서 상태를 어렵지 않게 표현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대범인의 조건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파티에서 유색 투명한 잔을 들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행복한 모습으로 비춘다. 돋보이는 사람은 더 멋있다. 그곳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뭔가 무대 뒤편의 고립된 이처럼 표현된다. 이 때문에 소심인은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언급되는 상황, 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조건을 당연한 듯 권유받는 상황을 겪고는 한다.


소심인도 행복을 느끼고 다루는 방식이 있다. 대부분 조용하고 감정 표현을 아낀다. 외부의 불필요한 자극을 줄여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들을 즐긴다. 당연히 한적한 곳에서 안락하고 행복한 느낌을 얻는다. 설령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굳이 그것을 타인과 공유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내가 느끼는 기분일 뿐이다. 불쾌한 기분을 해결하고자 할 때도 대범인과는 달리 주변으로 쉽게 알리지 않는다. 그것을 나누는 상황 자체가 스스로를 각성시키거나 예민하게 만들어 정작 해결해야 할 것들은 진도를 못 빼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열하면 인간미가 좀 없어 보이는데, 이는 함께하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사공이 많은 대화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면, 소심인이다. 어느 모임 초반 홀로 사색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면, 그 역시 소심인이다. 그는 멈춰 있거나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공유하기에 편안한 상대가 주변에 없을 뿐이다. 오히려 내면은 꽤 바쁠지도 모른다. 멍하니 앉아서 은하수를 헤엄치기도, 머릿속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흐뭇하게 웃으며 좋았던 기억을 정리한다. 원래 그렇다. 그랬다. 소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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