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Jun 12. 2018

그들의 회의엔 나름의 속도가 있다.


이곳의 회의실엔 발표석이 없다. 긴 테이블 끝에 대형 모니터가 있긴 하지만 누군가를 발제자로 규정하는 자리나 장치는 없다.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누구든 필요한 시점에 말을 뱉을 수 있다. 


팀장을 포함한 일곱 명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소심한 사람들의 회의인 만큼 조용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보다 더 고요했다. 무거운 공기 탓에 심장이 촐랑거렸다. 침묵에 약한 목젖은 괜스레 헛기침을 뱉거나 침을 삼켰다. 누군가 빨리 회의를 시작해주길 바라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보고자나 진행자는 그곳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니.


그런데 진행자의 목소리는 모니터에서 꽤 떨어진 내 옆자리에서 들렸다. 그 차분한 음성은 밀도 높은 침묵을 뾰족하게 뚫고 나와서 회의 주제와 개략적인 진행 상황을 잔잔하게 읊었다. 진행자의 얘기가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뭔가 잘못된 걸까.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미간에 힘을 모은다든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메우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잠시 후 누군가 의견을 더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얇게 떨렸지만, 자신의 의견을 중간에 거두진 않았다. 회의 참석자들은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이내 다른 이도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점차 침묵의 공기는 줄어들었다. 의견 혹은 이견을 공유하며 주제를 구체화했다. 이곳에서 겪은 첫 회의의 기억이다. 나 역시 점차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여러 의견을 낼 수 있게 됐다.



# 소심한 회의엔 나름의 속도가 있다


소심인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망설임을 갖고 있다. 이는 타인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납득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 상황에 따라 툭 뱉어놓고 나서 생각할 수 있는 대범인의 성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소심한 시선으로 봤을 때 지나친 자신감은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충분히 숙고한 후 자신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시점에 앙다물고 있던 입을 여는 게 보통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의 회의는 나름의 속도가 정해진 셈이다. 서로의 기질을 알고 있어서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각자가 원하는 게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므로 굳이 발표석이 필요 없다. 그런 건 오히려 발언의 기회를 제한할 뿐이다.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는 모습도 꽤 비슷하다. 가령 이견을 제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만 봤을 때’,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도 좀 드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상대에게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에 내 의견의 범위는 명확하게 규정한다. 이따금 결정이 지연되긴 해도, 대부분의 회의는 순조롭게 흘러간다.




# 소심한 회의에 대범인이 낄 때


놀랍게도 소심한 회의의 속도는 단 한 명의 대범인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진다. 얼마 전 신규 프로젝트 진행 회의에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참여했다. 부서의 성격상 대범인이 여럿 있었다.


“자! 제가 단언컨대 이 사업은 진행해선 안 됩니다.”


회의 주최자의 사업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대범인A가 입을 열었다. 진행하기엔 너무 위험한 사업인데, 기존의 다른 많은 업체가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만 생각하시죠? 이거 가능성 있습니다, 대범인B가 즉시 이견을 더했다. 아니, 제 얘길 좀 들어보세요! 둘은 사업의 성공 여부를 놓고 소란스러운 공방을 벌였다. 소심인들은 한동안 그들의 설전을 지켜봤다.


“그… 위험한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기존 업체들과 이런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에, 음, 그 다른 점을 활용했을 때의 장점을 충분히 따져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회의가 지속되자 소심인A가 말을 꺼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대범인 A가 꼬리를 물었다.


“생각해보세요. 이건 딱 봐도 보이는 거 아닌가요? 이미 물 건너간 거라고요!”

“저도 사실 성공률에 대해서는 대범인A님과 유사한 관점인데요. 만약 그렇다면, 혹시 실패했을 경우에 우리가 얻는 부분은 전혀 없을까요? 이 분야가 조금 생소하니까, 그에 대한 상세한 레퍼런스라든가, 정돈된 제안서 등… 이후의 유사 분야에 도움이 될….”


소심인B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범인 A가 숨을 길게 뱉었다. 그러곤 눈꺼풀에 힘을 주며 말한다.


“이 회의가 실패로 얻는 것들을 따져보는 회의였던가요?”



# 대범인과 소심인의 속도 차이


만약 회의가 좀 더 일찍 끝났다면 소심인들의 의견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회의가 지속되었더라도 몇몇 소심인은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꼭 모든 사람이 의견을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대범인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둘은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범인은 주어진 상황이나 임무를 빠르게 수행하는 것을 즐기고 명예나 물질 등의 보상을 체감하길 원한다. 반면 소심인은 보상 자체는 당장 중요하지 않다. 관련된 상황이나 업무가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점검하고 돌아본다. 당연히 회의를 할 때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도 다르다. 대범인은 현재 발생하는 일들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는 반면, 소심인은 이것저것 분석하고 가정하며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이래저래 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정확하다.


여전히 사회는 좀 더 대범한 인재를 따른다. 회의석에서조차 화려한 언변이나 ‘자신 있습니다!’라고 내지를 수 있는 패기가 중대한 결정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회의의 핵심은 여러 의견을 통해 함의를 찾는 것이 아니던가. 언변 좋고 목소리 큰 의견에 의해 더 중요한 아이디어가 묻히는 회의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속도의 균형이 필요하다.


대범인은 빠르다. 이따금 그 빠른 황새를 쫓다가 가랑이에 금이 가곤 한다.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떠나버리는 장면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렇게 소심한 당신은 중요한 정답을 끝내 꺼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매번 가랑이를 찢을 필요는 없다. 소심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만약 내가 타고 있는 열차가 지금까지 잘 달려왔다면 단지 빠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열차는 한 땀, 한 땀, 수놓인 레일 위를 달려왔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