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저번주 수요일에 어른이 됐다.
아니, 화요일이던가. 혹은 그보다 오래 전일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20대였다.
10대였던 나에게 있어서 그 이전까지의 시간은 주민등록증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에 가까웠다. 교육 과정의 흐름이 공교육의 피날레인 수능시험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을 끝내면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곳, 그러니까 20대이자 성인이 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갈 수 없는 곳에 가고,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었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딱히 제약이 없는 자유인의 삶. 그야말로 어른의 세계. 그때가 되면 인생의 많은 장면을 겪고 수많은 비밀들을 알게 될 것 같았다.
이렇듯 신생아의 발가락만큼 아담한 상상력으로 20대를 꿈꿨으니, 10대인 내가 20대 이후의 삶을 예측해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당시 떠올렸던 30대는 뭐랄까, 삶의 수분이 쭉 빠진 아저씨나 아줌마 정도였다. 퍽이나 퍽퍽해 보이던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재미로 살아갈지 예상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모님 나이인 40대는 오죽했으랴. 그들은 세상 모든 과업을 끝낸 후 동산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였다. 내가 그 동산에 도달할 일은 없다고 생각될 만큼 그곳은 멀리 있었고, 혹여 도달한다고 해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있을 게 분명했다.
한데 억겁일 거라 여겼던 그 시간은 막상 살아보니 찰나더라. 돌아보면 20대까진 그냥 10대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철이 부족하고 정신머리는 오간데 없다. 뭔가 깨달은 척은 하고 싶은데 딱히 아는 게 없다. 여전히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더라. 그렇게 '부산스러웠던 20대'는 책장을 넘기듯 쓱 지나갔다.
30대 역시 기별을 하고 오진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거리의 인파 속 사람들처럼 무심하게 다가와서는 그 속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다만 이 시기에는 20대와 달라진 한 가지가 있다. 더 이상의 실수를 봐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30대까지는 계속 성장을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새로운 경험과 실수가 반복되기에 늘 배우고 고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생기는 일상의 리듬과 생동감 같은 게 있었다. 더 이상의 실수는 봐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기회가 주변을 맴돌며 나에게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이전의 연속적인 흐름은 끊겼다.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넘어와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존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려는 듯, 그것을 상기시키는 상황이 집요하게 반복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저번주 수요일쯤, 마침내 나는 어른이 됐다.
실은 언제인지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전일 것이다. 누군가 나를 어른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후배가 조언을 구했고, 회의에서 내 판단을 기다린다. 이런 일들이 마치 저번주부터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어른을 유예하려는 마음 탓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번 주가 됐어도 나는 어른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이만큼 자라지 못하고, 무작정 그걸 먹기만 했다.
나만 빼고 다 어른이다.
이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