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심인에겐 가치를 보존하는 능력이 있다

by 왕고래


“오늘 점심에 같이 먹을 사람 없을 거예요. 이거 드세요.”


박 대리가 새로 온 인턴에게 샌드위치를 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대범인, 인턴인 그녀는 소심인이다.


박 대리는 오늘 그녀의 점심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름의 방식으로 배려를 했다. 물론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어떻게 먹길 원하는지 혹은 점심 자체를 먹을 예정인지’ 등을 묻진 않았다. “사무실에서 먹어도 되니 편하게 드세요”라는 말을 더했다.


대범한 배려가 명확하고 편할 때도 많지만, 그날은 조금 어긋난 것 같다. 인턴은 감사하다며 샌드위치를 받았으나 그것을 사무실에서 먹지 않았기 때문.


점심시간이 됐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업무가 급한 몇 명만 남아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조용했던 것 같다. 정적을 깨는 ‘부스럭’ 소리가 났고, 나는 슬쩍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의 주체가 내 반응에 신경 쓸까 봐 정말이지 눈알만 돌렸다. 그녀가 샌드위치의 포장지를 뜯다가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싸서 옆에 둔다. 잠시 후 큰 결심을 한 듯 포장지를 열다가 옅은 숨을 뱉으며 다시 넣는다. 그렇게 두어 번 더 반복하고는 결국 샌드위치를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 샌드위치는 회사 건물 1층의 전문점에서 박 대리가 사다 준 것이다. 하지만 인턴의 손에 들린 채 다시 매장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그곳에서 샌드위치의 포장지를 벗기고 맛있게 먹었다.


마침 건물로 들어서다가 그 모습을 본 부장님이 박 대리를 불러 “왜 인턴을 챙기지 않았냐~. 매장에서 혼자 쓸쓸하게 먹더라” 하고 다그쳤다. 박 대리는 당혹스러웠다. 분명 사다 준 것 같은데 그건 꿈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왕고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그렇게 돌아간 바다에서, 고래는 다시 바다가 된다.

1.7만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조용하게 역사를 바꾼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