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회의실엔 발표석이 없다. 긴 테이블 끝에 대형 모니터가 있긴 하지만 누군가를 발제자로 규정하는 자리나 장치는 없다.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누구든 필요한 시점에 말을 뱉을 수 있다.
팀장을 포함한 일곱 명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소심한 사람들의 회의인 만큼 조용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보다 더 고요했다. 무거운 공기 탓에 심장이 촐랑거렸다. 침묵에 약한 목젖은 괜스레 헛기침을 뱉거나 침을 삼켰다. 누군가 빨리 회의를 시작해 주길 바라며 스크린 근처의 사람을 바라봤다. 보고자나 진행자는 그곳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니.
그런데 진행자의 목소리는 그곳에서 꽤 떨어진, 내 옆자리에서 들렸다. 그 차분한 음성은 밀도 높은 침묵을 뾰족하게 뚫고 나와서 회의 주제와 개략적인 진행 상황을 잔잔하게 읊었다. 진행자의 얘기가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뭔가 잘못된 걸까.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미간에 힘을 모은다든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메우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잠시 후 누군가 의견을 더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얇게 떨렸지만, 자신의 의견을 중간에 거두진 않았다. 회의 참석자들은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이내 다른 이도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점차 침묵의 공기는 줄어들었다. 의견 혹은 이견을 공유하며 주제를 구체화했다. 이곳에서 겪은 첫 회의의 기억이다. 나 역시 점차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여러 의견을 낼 수 있게 됐다.
소심인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망설임을 갖고 있다. 이는 타인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납득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 상황에 따라 툭 뱉어놓고 나서 생각할 수 있는 대범인의 성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소심한 시선으로 봤을 때 지나친 자신감은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충분히 숙고한 후 자신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시점에 앙다물고 있던 입을 여는 게 보통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의 회의는 나름의 속도가 정해진 셈이다. 서로의 기질을 알고 있어서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각자가 원하는 게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므로 굳이 발표석이 필요 없다. 그런 건 오히려 발언의 기회를 제한할 뿐이다.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는 모습도 꽤 비슷하다. 가령 이견을 제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만 봤을 때’,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도 좀 드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상대에게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에 내 의견의 범위는 명확하게 규정한다. 이따금 결정이 지연되긴 해도, 대부분의 회의는 순조롭게 흘러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