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처방전 I
소심인에게 특화된 초능력이 있는 것처럼, 소심인이라 더 자주 겪는 어려움이 있다.
엄마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
되는 일도 참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 걱정 서린 엄마의 얼굴에 대고 난데없는 짜증을 뱉었다. 집으로 막 들어서던 길이었다. 일과 사랑 모두 연패 스코어를 쌓아가던, 당시의 여느 일상처럼 어두운 낯빛을 하고.
사실 그날은 집에 들어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을 더 겪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진상 손님을 만나 전에 없던 수치심을 맛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얼큰히 취한 아저씨의 과녁이 됐다. 사장님은 이따금 있는 일이니 똥 밟은 셈 치고 툭 털 라고 했다. 얼큰 아저씨는 상기된 내 얼굴을 조롱하듯 쳐다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익숙한 냄새와 온도의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얼굴이 안 좋다며 걱정하는 엄마를 본 순간, 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끝으로 짜증이 튀어나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화풀이를 한다. 다른 어딘가에서 겪은 설움이나 분노를 가까운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해 주는 혹은 만만한 이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부를 묻는 엄마가 답답해서, 어색하게 위로하는 아빠가 바보 같아서, 세상 편해 보이는 동생이 눈에 띄어서, 그렇게 여러 번 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후회하면서도 머지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전치’라고 한다.
전치(displacement, 치환):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감정 및 갈등을 보다 덜 위협적인 대상이나 사람에게 향하게 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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