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처방전 VI
나에겐 많은 무용담이 있다. 세 개 정도 풀어보겠다.
우연히 마주친 내 얼굴에 적잖이 놀랐다. 거울을 너무 오랜만에 본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고, 수분을 잃은 오징어가 썩은 미역을 걸치고 있는 듯한 몰골에 한 번 더 놀랐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날 마주하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해칠 것 같았다. 큰맘 먹고 근처 미용실을 찾아갔다. 미용사의 '마술'에 힘입어 변모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미용실에서 기대와 다른 경험을 했다. 미용사인 그녀는 퉁명스러웠다. 내가 정확히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묻지 않고 “많이 하는 스타일로 해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만의 길을 갔다.
중간에 뭔가 물어본 것 같았는데 내가 듣지 못하고 “네?”라고 되묻자 말을 잇지 않았다. 파마약이 이마로 내려와서 “여, 여기 흐르는...”이라고 하자, 사과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젖은 헝겊으로 약을 걷어냈다. 기대했던 '마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다. 그녀는 나를 의자에 앉혀둔 채로 중화제를 뿌렸는데, 문제는 마감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오른쪽 이마를 타고 액체가 빠르게 흘러내렸다. “여기, 흐르는데...” 정체불명의 헝겊 등장. “여기 왼쪽에도 흘러요.” 헝겊 등장. 목 뒤로도 차가운 액체가 내려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 옷에 곧 닿을 참이다. 오징어가 중화제 줄기로 덮이기 시작할 때쯤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나를 머리 감는 곳으로 안내했다. 난 얼굴을 타고 내린 액체를 바닥에 뚝뚝 떨구며 좀비처럼 그녀를 따라갔다. 역시나 사과는 없었다.
돌아봤을 때, 아마도 미용사는 그날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어떤 개인사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일관적으로 대충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가운 태도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직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태도나 역할도 결여된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두 눈에 중화제 테러를 당해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불편했고, 불쾌했고, 황당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뭔가 말하진 못했다. 썩은 미역이 드센 넝쿨로 변한 것을 확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 머리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지만, 미간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조금이나마 불만을 전달한 게 전부다. 돈을 내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왔다.
왜 성악이 아닌 심리학을 택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선배의 목소리는 굵고 웅장했다. 강의실엔 같은 전공을 하는 석·박사생이 모두 모여 있었고 분위기는 삭막했다. 성악가 목소리의 그는 ‘최근 기강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다’며, 선배들을 보면 90도로 크게 인사를 하라고 했다. 무슨 병영캠프도 아니고, 인사 같은 기본적인 태도를 굳이 90이라는 친절한 수치까지 들어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외에도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몇 가지 행동수칙을 늘어놓았다.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할 말 있는 사람은 지금 하도록.”
말을 꺼낸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침묵을 유지했다. 굳이 나에게 물어본 것도 아닐뿐더러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그는 별다른 반론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강의실을 나갔다. 이어서 다른 선배 연구원들의 ‘같은 내용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역시 이견은 없었다.
업무의 윤곽을 막 파악해 가던 시절, 부장님의 불호령을 맞았다. 그는 평소 고요했던 사무실이 더 숨죽일 만큼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나무랐다. 내가 왜 혼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파도는 거셌다.
다만 파도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부서 간 업무 흐름의 구조적인 문제였고 그대로 답습하던 나는 그것을 조정하기 위한 상징적 대상이 된 셈이었다. 파도는 내가 맞았지만, 메시지는 부서 간의 신경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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