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름.

Feat. 줏대 없이 끓고 식기를 반복하는 양은냄비 같다 욕하여도.

by 아스파라거스

살다 보면 끓어오르는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다. 대상은 사람일 수도, 물건일 수도, 삶 자체일 수도, 아니면 보다 형이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향한 그 끓어오름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복이 심한 탓에 그 끓어오름이 잦은 편이다.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자주 끓어오르는 편이다.

사는 내내, 쉬 끓고 식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며 한 세월 살다 보니, 몇 가지 공통되고 일관된 속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말했듯이, 끓어오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방법이 없고, 의지도 없다. 나는 끓어오름을 굉장히 즐기는, 혹은 중독된 편에 속한다.

두 번째, 동시에 모든 것에 대해 끓거나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에 대해 끓는 동시에, 다른 하나에 대해서는 식을 수도 있다. 복수plural에 대해 동시에 끓어오를 수도 있다.

세 번째, 트리거와 촉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욕구의 충족과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요즘도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라는 것이 있다. 내 경우 트리거와 촉매는 1부터 5단계가 순차적이거나 특정되기보다,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네 번째, 무엇인가를 향해 한번 끓어올랐다면, 그것 또는 그 비슷한 것을 향해, 반드시 다시 끓어오른다는 것이다. 일종의 취향이다.


마치 오래된 질병과도 같았던 나의 끓어오름 속성을 나는 불과 5~6년 전에야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나의 속성을 애써 버리려 하지는 않았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고쳐서 쓰는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올바른 끓어오름 사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절대 끓어오르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별해 보는 것이었다. 항온력이 떨어지는 존재들. 나의 갑작스럽고도 심한 온도차에 큰 상처를 입게 될 존재들. 삶에 방식이 드러나버릴까 무서워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쉽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를 망가뜨릴 것임이 분명한 것들. 이 역시 구별하기 쉬웠다.

최소한의 자제의 태도를 갖추고 난 지금은, 연속적인 끓어오름을 위한 트리거와 촉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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