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by 아스파라거스

갑자기,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좇고, 쫓김의 반복에 한없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무력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제껏 느꼈던 것과는 다르다.


그동안의 무력은 나를 화나게 했다.

하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함에 화가 났었다.

갈 길이 멀고 바쁜 사람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회복했을 때에 더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었다.


지금의 무력은 나를 그냥 정말 무력하게 한다.

질리게 한다. 지치게 한다.

처음으로 놓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간절히 대화를 하고 싶다.

정확히는, 마주 앉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닫고 산 탓에 얼마 남지도 않은 내 주변이,

어쩌면, 높은 확률로, 나를 지겹다 여길 수 있겠구나.

나의 이야기가 그들을 질리게 하고, 지치게 할 수 있겠구나.

늘 한쪽으로만 쳐대는 파도 같아 보일 수 있겠구나.

파도 아래에 있었던 조류와 와류의 뒤섞임 따위 알리가 없겠구나.


숨죽이지 않을 때의 나의 모습이란,

늘 무언가 필요한, 늘 같은 것을 요구하는 아이 같았겠지.


놓고 싶어서인지, 놓고 싶지 않아서인지,

말을 하고 싶었다.

말을 할 수 없었고, 말할 힘이 없다.

팔다리가 바람에 흐느끼듯 나풀대다 이내 축 늘어지고 만다.

등이 굽어 턱이 무릎에 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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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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