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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마드 Sep 12. 2022

[Prologue] 서른두 살, 떠나기로 결심하다

세계여행을 결정하기 전 고민해봐야 할 두 가지 질문

결혼을 준비하던 2  이맘  남편과 세계여행을 떠나자는 얘기를 했다.


남편은 픽업트럭을 몰고 대륙 횡단하는 로망이, 나는 유랑하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가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 일단은 여행의 꿈을 접어두었다.



전세계약 갱신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세계여행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완벽한 일상 회복은 아직이지만 조금씩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갈 기미가 보였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짐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였다.



1. 세계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첫째, 휴식 시간을 갖고 싶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바로 시작했다. 출퇴근만 열심히 했는데 어느덧 8년 차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좋은 커리어와 전문성을 목표로 이직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어느 순간 목표 지점 없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우리 세대는 70대까지도 경제 활동을 한다는데 앞으로 30 이상  일해야 한다면  1 정도쉬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회사를 다니면서 연차 쓰고 여행 가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부모님)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의 소극적인 의미의 휴식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만의 시간을 온전하게 보내고 싶었다. 질릴 만큼 놀고 쉬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베짱이 본능에 충실해보려고 한다.

연차 쓰고 뒹굴거려본 사람은 안다. 충분히 뒹굴거리기에 연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둘째, 앞으로 삶의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었다.

앞서 말한 '목표 지점 없는 달리기'와 이어지는 얘기다. 남편과도 서로 공감대가 많았던 부분이다.


여행을 다니며 제일 크게 배운 것은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거기에 절대적인 좋고 나쁨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스스로 저 깨달음이  바래 없어졌음을 느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경쟁과 성과주의에 익숙한 세대라고는 하는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트랙을 달리는 현실이 슬슬 지겨워졌다. '무얼 위해 이렇게 달려야 하나?' 셀프 문답을 해봐도 일상은 계속 돌아가서 언제부터인가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많은, 회사원 456번 정도의 배역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었다.

오징어게임을 이겼지만 친구와 가족을 잃은 기훈. 일상에 치이는 동안 우리도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지 모른다.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이 흐름을 끊어놓고 내 페이스대로 달릴 수 있는 힘을 회복하고 싶다.


나는 나를 바꾸는 일에 재능이 없는 편이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스스로를 바꾸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과 거기에 익숙해진 나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놓고 그곳에서 내게 익숙했던 삶을 조망하고 반추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2. 세계여행의 결과와 그 이후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지?


첫 번째 질문에 비해 난이도가 낮은 질문이었다.

우리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 정도다.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 대부분을 탕진하게 될 것이다. 어느 집단에도 적을 두지 않은 순수 자연인 상태가 되어 각종 대출과 신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리해질 것이다. '경단남', '경단녀'가 되어 재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굴이 좀 까매지겠지?


사실 IT회사 기획자와 개발자로 일하는 우리 둘에게 근 2년은 호황기에 가까웠다. 실리콘 밸리 발 권고사직, 채용동결 같은 소식을 들으면 등골이 서늘하다 (ㅎㅎ) 이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도 예전처럼 괜찮은 회사에서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가 어렵다는 걸 직감한다.


그렇다한들 우리는 '어떻게든 되겠지, 죽으라는 법 있겠어?'라고 받아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근거 없는 자신감이 꽉 차있는 상태라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더 낫지'가 우리의 신념이다.


즉흥여행을 좋아하는 MBTI P성향 부부. 나는 급진파 P라면 남편은 강경파P라는 걸 여행하면서 느낀다




물론 여행이 끝나고 기대하는 만큼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환경일 수도 있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두 다리가 튼튼하고 양가 부모님이 충분히 건강하실 때, 할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지금 여행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세계여행을 먼저 경험한 선배 부부들의 이야기만 봐도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세계여행으로 얻게 될 전부 일지언정 이마저도 죽을 때까지 우리의 즐거운 얘깃거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른두 살과 서른네 살,

그렇게 우리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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