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츠월드 속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어느 길을 가든 다듬어지지 않은 옛길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릴 마을과 숲과 공원으로 이끈다. 좁으면 좁은 대로, 굽이지면 굽이진대로 태초부터 인간이 두 발로 걸었던 그 길 위에 살짝 포장만 해둔 게 분명하다. 어떤 곳은 아직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긴 초원길이 펼쳐지기도 한다.
우린 이 길을 따라 또 다른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난다.
⇲ 코츠월드의 보석이라 불리는 치핑 캠든,고대 영어 cēping, '시장, 시장터'를 의미한다. 영국(유럽) 여행을하다 보면 '시장마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는 마을을 종종 목격한다. 중세부터 시장마을로 내려왔거나 왕의 헌장에 의해 시장권을 획득하여 정기적인 시장을 열 수 있는 마을이다. 이곳 또한 1185년 이곳 영주 휴 드 곤드빌이 잉글랜드국왕 헨리 2세로부터 시장 헌장을 수여받고, 시장 마을로 도시 계획을 세운곳이다.우리는 마을 중앙 'MARK HALL' 옆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마을 탐험에 나섰다.
⇲ 도시 중심에 자리한 모든 건축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다. 마을 중심뿐 아니라 이곳 대부분 건축물은 처음 지어졌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론 내부는 현대에 맞춰 편리하게 리노베이션 할 수 있지만 외부 모습은 쉽게 손댈 수 없는 곳이다. 수 세기 전의 건축물들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 낸 선조들처럼 현대의 사람들 또한 그대로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많은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옛것을 지켜내려 하고 자연을 쉬이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자면 자꾸 모국이 생각난다.
↓ 호기심 많으신 아버지는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 마을을 탐험 중이시다.
⇲ High Street, 대부분 도시의 중앙 도로는 도심 중앙을 반듯하게 쭉 뻗어 나가지만 이곳은 독특하게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길이다. 그 곡선길 위에 꿀색(코츠윌드 사람들은 코츠월드 속 건물색을 꿀색 & 황금색이라 부른다.) 석회암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있고, 건물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은 아름다운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으로 가득하다. 이 거리도 앞서 말한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의 절친이었던 이곳 영주 휴 드 곤드빌의 계획하에 세운 길이다. 그는 왕에게 바칠 세금을 늘리기 위해 마을에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왕으로부터 시장 헌장을 받아 시장을 세우고, 시장을 중심으로 이 거리를 만들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GM Trevelyan은 이곳을 "지금까지 잉글랜드 섬에 남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 거리"라 평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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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핑캠든의 랜트마크 Marker Hall, 코츠월드에서 가장 뛰어난 건물 중 하나라 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1627년)인 이 장터는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지역 농산물판매를위해 지어졌는데, 현재도 여전히 사용 중이다. 직 사각 모양의 건물 사방에 아름다운 아치형 통로가 있어 시장상인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니 시장으로 보기엔 다소 작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시대엔 작은 건물이 아니었을 게다.
작은 시골마을 장터 까지도 이렇게 섬세하게 공들여 지은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돌덩이를 다듬고, 아치를 세우고, 지붕을 올렸을까? 그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수세기 후 세상 사람들이이곳을 방문해 꿀빛석회암 건축물을 어루만지며 감탄할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1940년 마켓홀은 매각될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마들주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건물과 부지를 지켜냈고, 이 또한 National Trust에 기부되어, 현재 그곳에서 관리 보존하고 있다.
* 마켓 홀은 이곳 출신 국회의원이자 자선사업가였던 남작 Baptise Hicks 경이 상인들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그는 이곳뿐만 아니라 1612년 치핑캠튼의 집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구빈원(중세시대에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제공한 자선 주택)을 설립해 기부하기도 했다.
⇲ 치핑 캠든은 14세기와 15세기에 울무역으로 번영한 곳이다. 등이 긴 코츠월드 라이언으로 불리는 '코츠월드 양(영국이 원산지)'은 광택이 나는 긴털을 가진 롱 울 품종으로 유럽 상인들, 특히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이곳 양모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축척해 세운 양모교회(양털을 팔아 세운 교회)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작은 마을 곳곳에 아름다운 교회들이 많이도 눈에 띈다. 다 이 탐스러운 양들 덕분이란다.
⇲ 이곳 출신월리엄 그레벨은 캠든에서 가장 성공한 양모 상인 중 한 명이었다.(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양모 상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1380년경에 하이스트리트에 크게도 건축된 그의 집(그레벨 하우스)이다.
⇲ 치핑 캠던 High Street의 다양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상점들
⇲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 이런 작은 샛길 같은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네 뒷골목 풍경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 길을 걷다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잉글리시 티 한잔 마시며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져본다. 카페 안은 중세시대 뼈대를 그대로 살려두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개조해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 High Street 에는 다양한 문양과 이니셜로 건축이름을 붙여뒀다. 이곳은 14세기에 지어진 울 교환실 겸 상인회관(WOOLSTAPLERS HALL)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개인 소유지만, 여전히 당시 사용했던 상호를 붙여두고 있다.
⇲ Senger House, 누구의 집이었을까? 사뭇 궁금하다.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집이 유난히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 한참 앞에서 서성거렸다. 현재는 숙박업소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 Eight Bells, 여덟 개의 벨을 달고 있는 이곳은 레스토랑이다. 크기별로 조르르 달린 벨들이 사랑스러운 곳이다. 바람 불면 종소리가 울리겠지?
⇲ Eight Bells 레스토랑 모퉁이를 돌다 만난 비둘기, 비를 피해 어느 집 대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 녀석, 무심코 지나며 봤을 땐 고양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비둘기가 비를 피하고 있다. 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어도 꿈쩍도 않는다. 그래, 이 녀석의 터전이 이곳일진대 객인 내가 뭔 짓을 한들 두려울게 뭐 있을까? 무심한 비둘기도 그렇고 문 앞에 대중없이 올라온 풀과 들꽃까지도 자연스럽고 예쁘다.
⇲ 이곳에 있다면 뭔들 아름답지 않을까? 꿀빛 건물에 낀 잿빛으로 변한 이끼도, 다닥다닥 올려놓은 돌지붕까지도 아름답다.
⇲ 캠든 하우스 게이트웨이, 마을 중앙 마켓홀을 지은(침례교 힉스 경)의 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게이트 안 넓은 영지의 저택은 1645년 내전 중 왕당파에 의해 불타버리고 이렇게 게이트만 남아있다.
⇲ 양모무역의 번성으로 세워진 양모교회,'세인트 제임스 교회'는 마을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코츠월드에서 가장 훌륭한 양모 교회 중 한 곳이다. 이곳 교회 안 별실엔 캠든의 자선사업가 힉스경과 그의 가족들이 묻혀있다.
⇲ HidCote Manor 가든, 정원 소개글에서 보자면 이곳을 영국의 위대한 정원 중 한 곳으로 표현해 뒀다. 마을의 작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진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거대한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정원이 나타난다. 무성한 숲과 아름드리나무와 아름다운 꽃이 어우러진 가든에 들어서는 순간 그저 감탄사만 나온다.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꽃들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가든을 일군 이가 직접 영국뿐 아니라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것들이란다. 한국에서 들여온 게 있나 자세히 봐야겠다.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싶은이라면 이곳에서 흠뻑 영감을 받아 가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장소가 없을 듯하다.
입구엔 작은 식물가게가 있고, 모든 곳이 휴식처이자 힐링 공간이다. 정원 안 카페에서 간단한 점심과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다 지루해지면(지루할 틈이 전혀 없겠지만) 정원 어느 곳에서든 꽃멍, 숲멍, 물멍을 때리며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행복 지수가 하늘높이 치솟을 것만 같다. 이곳에서 허드레 일이라도 하며 한 계절만이라도 살아본다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겠다.
치핑캠던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요란스럽고 세상 사람들 다 아는 볼거리는 없지만, 친절한 영국 할머니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 그들의 삶 속으로 잠깐 들어와 평화로운 휴식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한나절동안만 가든에서 보내도 충분한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인 코츠월드 여행이지만, 날 좋은 날(봄, 여름) 꼭 한번 다시 들러야 할 곳 중 한 곳으로 별표 해둔 곳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야 한다. 다음에 꼭 다시 와봐야 할 곳으로 저장해 뒀지만, 이곳 또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 비만 내리지 않았어도 좀 더 여유롭게 골목골목을 누볐을 텐데..., 부드럽게 휘어진 High Street를 따라 다음 마을로 발길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