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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자의 피난처였던 곳

by 봄이 Feb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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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St. Carantoc 가톨릭 성인이다.

6세기에 대수도원 원장, 이곳에  그가 세운 St. Carantoc 교회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그의 이름을 기리는 교회가 많은 걸 보면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케레디지온(고대 웨일스 왕국) 왕국의 왕자였지만, 왕이 되기 싫어 이곳 Lllangrannog로 도망쳐 왔단다. 성인의 깊은 삶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지만 아일랜드, 브리타니(프랑스 북서부에 있는 반도), 콘웰 등으로 선교 여정을 다녔던 순례자였다. 항상 한 손에 성경을, 등에는 휴대용 제단 봇짐을 메고 다녔던 분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존경받는 성인중 한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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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눈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깐 쉬어야겠다. 마을에는 오래된 펍과 카페가 몇 군데 있다. 펍에는 마을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골 어딜 가나 마을 펍은 그들의 사랑방이다. 테이블 위에 맥주잔을 하나씩  올려두고 수다 삼매경이다.  다소 소란스럽지만 나름 질서도 있고 유쾌하다. 눈길만 마주쳐도 소박한 미소를 던지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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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테이블에 앉아 먼바다를 바다보다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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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넘실대는 파도에 묻힌 여인을 보는 순간 긴장을 했지만, 이내 다시 아무렇지 않게 파도를 즐긴다.  파도가 넘실 거리든 물이 보트로 들어오든 아랑곳 않고 유유자적 파도에 몸을 맡간 채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워진다.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랑그라녹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변 동쪽에는 독특한 바위와 동굴, 암반이 가득 깔려 있다.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합이 제법 실하다. 저거 뜯어가면 시원한 홍합탕 몇 번은 해먹을 텐데..., 시기적으로 가을이나 초겨울에 체취해야 안전하겠지?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 랑그라녹 해변 바로 옆 실보스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변 사이에 있는 Carreg Bica로 알려진 독특한 암석 지형으로 해변이 둘로 나뉘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옛날 이 지역에 거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심한 치통으로 고통받다 이를 해변에 뱉어 버린 게 아래(사진 속) 우뚝 서 있는 암석이란다.

전설은 전설일 뿐, 이곳 바위는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층층이 쌓인 겹 사이에 숨어있는 화석이 보인다. 실루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로 알려진 오래된 암석 지층은 전 세계 지질학자들의 중요한 학술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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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lborth(실보스) 해변은 썰물 때 랑그라녹 마을 해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바닷길이 열린다. 사진에서 처럼 실보스 해변엔 사람이 거의 없다. 썰물 때는 오가는 산책객들이 더러 있지만, 이렇게 물이 들어오면 가파른 실보스 해변 쪽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실보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수직에 가까운(조금 과장) 계단길이다.


✾ 실보스 해변에서 해안길로 오르는 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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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웨일스 PAYS DE GALLES(지형 설명 : 사진 왼쪽이  실보스 해변, 오른쪽이 랑그노그 해변)사진출처 :  웨일스 PAYS DE GALLES(지형 설명 : 사진 왼쪽이  실보스 해변, 오른쪽이 랑그노그 해변)

이제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더니 갑자기 빗방울을 뿌려대다 금방 멈춘다. 다행히 지나는 비였나 보다. 영국의 변덕 심한 날씨에 잠깐 긴장을 했다.

마을 왼쪽으로 난 해안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다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좁은 오솔길로 길은 변하고, 온갖 식물과 꽃들이 정신없이 흐트러져 피어있다. 고사리는 활짝 펴 내  팔만큼 긴 잎으로 길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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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솔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서면 철기시대 요새가 있는 Pen-y-Badell의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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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펜디니스 로크린이라 불리는 철기시대 요새로 기원전 500년 전 사람이 살았던 정착 유적지다. 봉우리로 올라가 요새를 둘러보니 내륙 전망도 압권이다. 건너 넓은 목초지가 다채로운 초록 천조각을 하나 둘 곱게 오려 이어 논 조각보처럼 들판이 곱디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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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와 Pen-y-Badell 기슭으로 난  해안 길로 접어든다. 길은 가파른 경사 길이다. 시간에 쫓길 일 없으니 풍경도 눈에 담고, 산들바람도 맞으며 유유자적 오르면 가파른 경사길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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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른 언덕 끝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그곳엔 이름 모를 하얀 들꽃이 들판 가득 피어있다.

해안길 풍경은 영국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고 색감이 풍부하기 그지없다. 끝없는 초록숲이 펼쳐지다 어느새 노란 양탄자가 깔린 언덕이 나타난다. 몇 발짝 옮기면 보랏빛 수채화가 그려져 있고, 다시 황금빛 가시금작화가 해안 언덕을 화려하게 채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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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서 6월경, 웨일스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바람결에 향기인 듯 아닌듯한 희미한 향이 산책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꽃이 있다. 향기에 이끌려 다가가 보면 계곡에 자생하는 은방을 꿏 무리가 곱고 여린 모습으로 방울방울 향기를 엮어 흔들어 대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럴 즈음 빨리 그 은방울꽃 무리의 유혹을 떨치고, 계곡을 빠져나와야 한다. 은방울 꽃은 곱고 아름답지만 꽃을 만지다 꽃가루가 묻은 손이 입이나 호습기로 들어가게 되면 정말 위험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으니..., 꽃 이야기만 나오면 이야기가 이렇게 딴 데로 방향을 틀어 버린다.>


언덕에서 잠시 멈춰 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짙은 안개에 가려 바로 앞 해안만 보일뿐, 지나온 곳은 더 이상 보여주기 싫은 듯  안갯속에 숨겨 버렸다. 그럼에도 너무나 아름답고 고요하다. 바다가 안개담요를 덥고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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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했는데, 이쯤에서 한숨 돌려야겠다. 잠깐동안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데, 잔잔한 서풍에 구름이 하나둘 흩어져 간다. 아~ 얼마나 시원하고 아름다운가! 눈앞 숲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그런들 어쩌리...,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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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 어딜 가든 거친 자갈밭이나 바위틈에 자생하는 야생화다. 멀리서 보니 암석위에 누가 일부러 연출해 놓은 듯 조화롭게 피어있다. 웨일스 해안가를 산책할 때마다 뵜는데도 아직 이름을 알아보지 못했다.  바위에 깔려있는 돌이끼와 어우러진 연분홍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먼 곳에서 보니 꼭 만개한  진달래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봄날이면 고향마을 뒷동산에 어김없이 피고 지는 진달래...,

풍경이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 갑자기 울컥해지며 그리움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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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전히 오름의 연속이지만 아름답고 고요하니 견딜만하다.

낑낑거리고 오르다 보면 힘내라 위로하듯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준다.

산들바람의 응원을 받아 오르고 오르다 보니 결국 언덕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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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는 평원이다. 다시 가시금작화가 환하게 길을 밝히고, 편안하고 고요한 길을 따라 걸어 나가다 보니 발아래 계곡 속에 감춰진 콤티두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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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여전히 한적하고 아름답다. 길은 계곡을 따라  마을로 향하고 있다,.  작은 개울이 마을 앞 해변으로 흘러든다.  물길 따라 나도 마을로 흘러들어 잠시 이 작은 마을에 스며들어 보련다. <Llamgrammog에서 Cwmtydu까지 6.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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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아기 손톱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은방울 꽃을 보내드립니다.

고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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