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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늘(명이나물) 밭에 다녀왔어요.

햇 명이잎 한 소 푸리 따왔네요.

by 봄이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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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꽃이 피고 지는 순서에 맞춰 이곳저곳 꽃구경 다니던 한국 생활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봄이면 다른 이유로 꼭 가봐야 할 곳들이 하나 둘 생겨 나고 있다.  꽃구경이야 집 근처공원 몇 곳 돌다 보면 계절 꽃들을 실컷 볼 수 있고, 우리 집 가든에도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 끊이지 않아서인지 이제 꽃에 대한 갈증은 살짝 희미해진 듯하다. 


모국에 살 땐 일만 하다 보니 살림과 담을 쌓고 살아온 터라 반찬거리 귀한 줄 모르고 살았었다. 아니 엄마와 언니가 모든 걸 다 해주셨으니 걱정할 것 없이 자알 먹고살았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한 달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향 음식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이 자꾸 모국의 음식을 원하고 또 원했다.

몇 달을 평생 먹어왔던 음식(반찬)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우리와 다른 식문화에 맞춰진 찬거리 중 잘만 찾으면 한두 끼 정도 비슷하게 해 먹을 만한 것들이 수두룩 하지만, 정작 곰삭힌 김장김치(갓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깻잎, 열무, 겉절이... 등등)를 포함 온갖 종류의 장과 젓갈, 각종 장아찌, 밑반찬들이 빵과 버터가 놓인 식탁 위에서 춤 주듯 떠돌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산책을 나설 때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혹여 내가 아는 나물들이 보이지 않을까 메의 눈으로 숲과 들을 살피고 다니던 시절에 마을 어귀 산책길에서 작은 명이밭을 발견해  명이잎을 따던 우리에게 산책 나온  할머니가 여기보다 더 많은 곳이 있다며 알려준 곳이 이 명이밭이다.  

집에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명이 밭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내가 너무한 건가 의심도스럽다.)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그곳으로 가는 길 강가에는 넓은 야생 부추밭도 있다. 조금 더 숲으로 들어가면  명이나물 밭이 드넓게도 펼쳐져있다.  여름에는 블랙베리(복분자)가 가는 길 양쪽에 짝 깔려있다. 그러니 내게는 최고의 장소일 수밖에, 이곳 사람들은 이중 어느 것 하나 거들떠보지 않기에 오롯이 내 밭이 되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바람도 쐴 겸 명이밭으로 산책이나 가자며 모모에게 무던히도 말을 했지만,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자칭 놀이방(컴퓨터방)에서 꼼짝을 않고 날씨 탓만 하고 앉아있다.  비 온 뒤 비가 그쳤으니 가자하면 땅이 질퍽할 것 같으니 해나면 가자,  해가 나면 지금 가면 시간이 너무 늦은 거 아니냐?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날이 추우니 다음에 가면 안 될까? 별의별 핑계를 늘어놓고만 있다.

이쯤 되니 자꾸  다 늙어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의심도 해본다..


집에서 10분 거리니 혼자 후딱 다녀올 수도 있지만, 워낙 숲이 깊어 선뜻 혼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땐 언니랑 여동생과 친구들이 더 그리워진다. 가까이 산다면야 언제든 바구니 하나씩 들고 수없이 드나들었을 텐데 말이다. 낯선 이국땅 외진 마을에 유일한 말동무이자 벗이어야 하는 남편이 저러니 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니..., 그냥 얄밉고 서운한 마음뿐이다.


두 주를 조르고 조르다 어제 마을 보건소(명이밭 숲을 지나는 길목에 있음)에 모모의 볼일이 있어 거기 들렀다 나오는 길에 명이밭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갈 테니 그리 알아라 으름장을 놓고 겨우 그와 함께 숲으로 향했다.


숲은 이제 막 기지개를  있었다.

명이밭을 둘러싸고 있는  들장미와 뒤섞인  덤불 속에도 수많은 생명이 꿈틀 거린다.

명이밭은 작년보다 더 넓어진 듯하다.  꽃이 피고 지며 꽃씨를 넓게도 흩뿌려 밭을 점점 확장하고 있다. 명이밭 근처에 들어서니 풋풋하고 향긋한 명이향이 솔솔 풍겨온다.  처음 싹을 틔운듯한 아기 명이잎이 낙엽을 비집고 수런수런 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뿌리에서 잎사귀를 올린 명이잎은 제법 실하다.

한참 그렇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피고 있는데 모모가 말했다.

'큰 잎 좀  따다가 저녁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

'오메~ 얄밉기도 해라...., 중얼중얼... 투덜투덜......, '

그렇게 가자 할 땐 귓등으로 안 듣더니 막상 명이잎을 보니 삼겹살 구워 먹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속으로 욕을 한 박아지를 해줬다.

'그러게, 맨날 방구석에만 처박혀있지 말고 밖으로 좀 나다니자.  몸에 근육량이 줄었네 어쩌네 말만 하지 말고 말이다.  몇 번을 그렇게 가자 할 때 진즉 좀 나서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육두문자를 겨우 주워 삼키고, 등짝 날리고픈  손바닥도 뒤로 물리고, 그 손으로 명이잎사귀를 뜯었다. 딱 삼겹살 싸 먹을 양만 뜯었더니, 모모는 뒷짐을 진채로 서서 저쪽에 있는 큰 잎사귀 좀 더 뜯으랜다.

'네에.... 네에... 쇤네 시키는 대로 합죠.'


남이었던 사람 둘이 만나 부부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힘듦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며, 격하게 실감하며 살고 있지만,

예순을 코앞에 둔 우리는 여전히 너와 나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오늘 브런치 북 <김미선 작가님>의 '조선남자 엿보기'를 실감 나게 읽었다.

 작가님(글 앞뒤 다 자르고)의 글 13화 글 말미에 <그 긴 여운 앞에 너와 내가 다시 우리로 환원한다.>문장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러 있었다.

모모와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너와 나로  분리되는 느낌이 더 크다.

이게 더 편하고 좋을 수도 있지만,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에 묻혀 지내는 순간순간 서운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모모,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순간은 아마도  우주여행을 KTX 타는 것처럼 쉽게 떠날 때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사색에 빠져 글도 읽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우리는 삼겹살도 구워 먹고, 명이전도 부쳐먹고,  김치도 담가 둘 다 배불리 먹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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