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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버터사이

이국의 부엌에서

by 봄이


엄마표 김치 하나면 세 끼도 거뜬하던 내가,
영국에선 하루 세 끼 중 한 끼는 빵,

나머지 까니도 대부분 현지 음식으로 때운다.
처음엔 속이 더부룩하고, 입안이 텁텁해 물생각만 났다.
하지만 어느새 빵이 밥처럼 익숙해지고 있다.
인간의 적응력은 참 놀랍다.
내 위장은 이미 브리티시 시민권을 얻은 듯하다.


생각해보면, 낙타도 물 없이 버티고
북극곰도 냉동창고 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나도 그들처럼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적응이란 결국 스스로를 달래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체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완전히 변한 건 아니다.
슈퍼에 가면 여전히 배추 코너에서 눈이 반짝인다.
보이면 일단 집어 든다.

어제도 결국 배추 두 포기로 백김치를 담갔다.


익숙하지 않은 버터 냄새 속에서도
내 안의 한국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국의 부엌에서 나는 조금 낯선 방식으로,
그러나 나름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적응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도 김치 냄새를 포기하지 않는 일.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국의 부엌에서 조용히, 나만의 진화 실험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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