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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Jul 07. 2017

여행이 내게 남긴 것

#22

57박 58일 7개국 20개 도시. 약 두 달 간의 여행 혹은 방황이 끝을 맺었다. 퇴사하기 전, 사무실에 앉아 남들 몰래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때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게, 많이도 흘렀다. 

여행을 통해서 무언가를 찾아오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행하는 매 순간이 행복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기쁜 날도 있었고 지독하게 외로워 눈물이 날 듯한 날도 있었다. 몸이 안 좋아 눈도 뜨기 싫은 날도 있었고 잠들기가 아쉬웠던 날도 있었다. 그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다가도 귀국 후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두려워한 날도 있다. 


돌아와서 그 모든 여운은 잔잔히 내 가슴속에 남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의 시작이자 끝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당연하게도 낯설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참으로 어설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저녁 9시가 되어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날 때 

내 마음도 함께 빛났고 

꼬불꼬불한 힘겹게 오르며 도착한 

개선문 위에서는 파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체코 프라하에서 


도착하자마자 소주를 먹자는 동행을 만나 

무려 한 병에 1만 2천 원이나 하는 소주를 기꺼이 지불하며 열심히도 마셨고 

처음으로 한인 민박이 아닌 호스텔에 묵을 용기를 냈다.

호스텔에서 만난 보스턴에서 온 미국인 친구는 

나를 만난 지 5분도 안돼서 어제 자신이 생일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새벽 4시까지 술은 진탕 마신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해 댔다.


이른 아침 일어나 공원에 올라가 가로수길을 걸으며

강을 끼고 펼쳐진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았다. 

‘여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어느 늦은 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니 위에서

기타를 치며 존 레넌의 Imagine을 부르던 (비록 그다지 잘 부르진 못했지만) 여자에게 가지고 있는 동전을 

탈탈 털리고 콜로세움으로 찾아가는 길에 만난 

이름 모를 수많은 건축물과 유적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동행들과 용기를 내어 맥주 한 캔을 챙겨 밤길을 나섰지만 

로마의 밤거리는 적막했고 무서웠기에 우리는 30분을 버티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야만 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는 포지타노는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왜 사람들이 그리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고 

이탈리아 남부 어느 작은 도시에서는 

정말 지독히도 깊은 외로움, 혹은 고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감정과 마주했다.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변가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과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대낮의 화려함도 좋았지만 

거의 사람들이 찾지 않는 늦음 밤에 느낄 수 있는 

바다의 고요함이 나는 더 좋았다. 


남부 지방을 돌며 매 순간 지중해와 함께 했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그 모습에 매료되어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포르투갈에서


유명 관광지를 굳이 찾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숙소의 작은 창문으로 바라보는 리스본 시내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을 느꼈다. 


우연히 찾아간 식당에서 먹은 대구요리는 

마치 한국의 매운탕을 먹는 듯했고 여행 중에 먹은 

음식 중 단연 최고라 할 만했다. 


Ericeira라는 작은 도시에서 

대서양 물을 수없이 먹고 물속에서 뒹굴며 서핑을 즐겼다. 

숙소에 돌아와 외국인 친구들과 모닥불을 피고 

와인을 마시는 시간이 꿈만 같았다. 

그 어떤 도시보다 떠날 때의 아쉬움이 컸다. 


모로코에서 


사막의 모래 위에 누워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은하수를 품은 별들이 무수히 하늘에 박혀 있었고 

떨어지는 별똥별에 초등학생 마냥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 깊은 밤 사막의 허공에 김광석의 노래를 띄웠고 

그렇게 나는 그 순간 행복을 느꼈다. 




많은 시간이 지나 그때의 기억을 꺼내 글로 표현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 내 머릿속에서 많은 장면들이 미화되고 재구성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은 재구성되고 미화가 되었던 그 장면들도 그 순간에 느꼈던 나의 어떠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라 생각한다. 미화된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하는 것도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리라.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에도, 반년이 지난 지금도 여행이 끝났음을 인정하기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즐겁기만 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끝맺음이 아쉬운 이유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 번 다시는 하지 못할 경험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면 '여행'의 가치는 지금처럼 소중하거나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떠나야만 하는 순간' 모두가 다르겠지만 떠나야만 하고 떠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시기는 물론 각자 다르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모두에게 한 번쯤은 찾아오는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그 소중 했던 순간을 마무리하는 지금의 나는 조금은 아쉽지만 담담하게 그 순간을 매듭지으려 한다.

언젠가 또다시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 도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기를

그 순간이 더없이 찬란하고 행복하기를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만 생각할 수 있어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오롯이 즐길 수 있어서

그래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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