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ckerair May 10. 2020

비의 '깡'이 특이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지금 최고의 밈이 되어버린 '깡'에 관한 사연

비의 노래 '깡'이 발표된 건 2017년 말이다. 노래는 차트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때 당시에 '깡'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일 1 깡'을 하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깡팸' / 출처: MBC '놀면 뭐하니?'


2020년 5월인 지금 '깡'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통계청까지도 '깡'을 가지고 드립을 치고 있다. '깡'을 비롯해 6년 전에 발표했던 '차에 타봐', '어디 가요, 오빠' 등 비의 노래들이 드립 요소가 되고 있다. 여기에 '자전차왕 엄복동'이라는 영화와 그가 술 한 잔 했다면서 올렸던 진정성 넘치는 SNS 게시물까지. 어느 때보다 밈을 자주 가지고 노는 코로나 시대에서 비는 엄청난 밈이 되었다.


이 사태의 중심에는 '깡'이라는 노래가 있다. 모두가 '깡'에 관해서 드립을 치고 있는 가운데, 조금 진지하게 '깡'에 대해서 알고 싶어 졌다. '깡'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 '깡'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이유를 추측하는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일단 비의 디스코그라피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JYP를 떠난 후 두 조력자가 주축이 된 디스코그라피


2007년 JYP를 나온 비는 자신만의 레이블을 설립한다. 그리고 2008년 정규 5집 'Rainism' 앨범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비의 대표적인 음악적 조력자는 두 명이라고 볼 수 있다. 태완(C-Luv)과 배진렬(JR Groove)다.



태완(C-Luv)의 2006년 정규앨범 커버


태완은 2000년 대 초부터 알앤비 뮤지션으로 활동했고 피타입, 주석과 같은 래퍼부터 휘성, 거미, 이민우 등의 앨범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2006년에는 본인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2010년도에도 버벌진트, 크러쉬 등과 함께한 준수한 노래를 계속 내놓기도 했다. 비의 4집 'Rain's World'의 수록곡 'Touch ya'를 작곡•작사했고 피처링으로도 참여하며 연을 맺었다.


이후에는 비의 앨범에 가장 많이 참여한 작곡가가 되었다. 비의 5집 'Rainism(13곡 수록)'에는 8곡, 스페셜 앨범인 'Back To The Basic(5곡 수록)'에는 4곡, 가장 최근에 발표한 2017년 앨범인 'My Life 愛(Inst 제외 5곡 수록)'에는 3곡을 작곡했다. '널 붙잡을 노래'가 대표곡이며 주로 비의 알앤비나 발라드, 혹은 팝 색깔이 짙은 노래들을 만들었다.




배진렬은 1999년 즈음 2인조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하지만 아이돌로서는 잘 되지 않았고 이후 JYP 소속 작곡가가 된다. 본래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고 류이치 사카모토를 가장 좋아해서 그런지 JR Groove라는 이름으로 뉴에이지 앨범을 몇 장 발표하기도 했다.


GOD의 '니가 있어야 할 곳'과 같은 히트곡을 만들었고 비의 1집 '나쁜 남자'의 3곡에 작•편곡으로 참여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JYP에서 독립한 비에게 작곡 의뢰를 받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Rainism'이다. 이후 'Hip Song', 'La Song', '30 Sexy'와 같은 강렬한 색채의 히트곡을 주로 만들었다.



'Rain Effect' 앨범의 작업 결과가 만족스러운 비와 배진렬 / 'Rain Effect' 다큐 중


배진렬은 비의 정규 6집 앨범인 'Rain Effect'에서는 전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차에 타봐'와 같은 슬로우잼 성격의 노래도 있고, 'I do'를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팝인 '마릴린 먼로'라는 노래도 있다. 댄스곡 비중이 많기는 하지만 제법 다양한 색깔의 노래가 있다.


참고로 이 앨범의 모든 노래의 작사는 비가 도맡았다. '차에 타봐'처럼 역시 가사로 화제가 된(?) '어디 가요, 오빠'와 'Superman'이라는 노래도 'Rain Effect'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Rain Effect' 앨범을 발표한 뒤에는 싸이와 함께 만든 '최고의 선물'이란 노래를 냈다. 그 이후 만든 앨범이 바로 '깡'이 수록된 'My Life 愛'다.



익숙한 앨범 'My Life 愛', 그리고 '깡'



'My Life 愛' 앨범은 'GANG'이라는 문구가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당연히 수록곡인 '깡'을 홍보하기 위함일 텐데 앨범 명과는 다른 문구가 있다는 점이 특이하기는 하다. 더군다나 그게 하필 힙합 앨범에 어울릴 법한 'GANG'이라서 인상적이다. 문제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다소 힙합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앨범의 1번 트랙인 '오늘 헤어져'는 어반 자카파의 조현아가 작사•작곡했다. 연인이 헤어지자고 말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정석적인 듀엣 발라드다. 그다음 세 개의 트랙은 태완이 작사•작곡을 맡았다. 2번 트랙인 '입에 달아'는 어쿠스틱 기타가 주가 되는 세레나데 성격의 노래다. 3번 트랙인 '다시'와 4번 트랙 'Sunshine'은 태완과 비가 공동 작사했다. '다시'가 현악 연주가 포함된 슬픈 내용의 발라드라면 'Sunshine'은 펑키하고 밝은 분위기의 팝이다.


1~4번까지의 노래들은 비의 노래로서 꽤나 친숙한 편이다. 애절한 발라드나 미드 템포의 팝이 주를 이루는 'My Life 愛'  앨범의 5번 트랙이 바로 '깡'이다. 노래들의 유기성을 감안하여 '깡'을 후반부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앨범에는 Instrumental 3곡을 포함하여 총 8곡이 수록되어 있다). '깡'은 앞서 자리하고 있는 4곡과의 온도차가 아주 극명히 다른 노래다.



My Life 愛 앨범 크레딧 정보 / 출처: 네이버 뮤직


그런데 '깡'을 만든 작곡가는 태완도 아니고, 배진렬도 아니다. 비도 작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깡'은 매직 맨션이라는 팀이 작곡했고 작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예 래퍼인 L.Tak이 작사를 했다. 비는 'My Life 愛' 앨범 기자 간담회 당시 "심사숙고를 많이 했다. 나 같지 않은 곡을 써달라고 했다. 내가 쓰면 뻔하기 때문"라고 말했다. 기존 비의 색깔이 아닌 타이틀용으로서 새로운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본인에게 익숙한 태완이나 배진렬이 아니라 새로운 작곡가와 작사가에게 '본인 답지 않은' 곡을 의뢰한 것이다. 



새로운 작곡팀 매직 맨션과의 획기적인 시도, 그러나...


A는 작사, C는 작곡, AR은 편곡 / 출처: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매직 맨션은 이름만 들으면 생소하지만 리쌍의 길이 이끄는 팀으로, KEYMAKER와 조용민이라는 작곡가도 속해 있다. 길이 프로듀서로 나왔던 쇼미더머니5에서 보이비의 '호랑나비'와 샵건의 '미친놈'과 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또한, 거미의 5집 'STROKE' 앨범 상당수 노래도 만들었다.


개별 작곡가 별로 살펴보자면 일단 길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리쌍의 멤버로 수많은 노래를 만들었고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곡가다. KEYMAKER는 페노메코, 베이직, 육지담 등 래퍼들의 노래를 작곡한 바 있다. 조용민은 전지윤을 비롯해 남윤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만들었다.


매직 맨션 팀이나 소속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들은 대체적으로 힙합이나 알앤비와 같은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음악 중에서 전자음악 성격이 있는 것은 드물다. KEYMAKER가 만든 페노메코의 음악들은 퓨처 베이스의 성격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전자음악에 속하는 곡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앨범 소개 글에 따르면 '깡'은 일렉트로닉 트랩 비트의 곡이라고 한다.



'자전차왕 엄복동' 개봉 당시 비의 인터뷰 / 출처: 에스콰이어(비가 언급한 대목에서 '앨범'이 아니라 노래 '깡'만 해당되지 않나 추정된다)


'깡'이라는 노래는 그야말로 수많은 모험의 결합체에 가깝다. 뮤지션 비는 '본인 같지 않은 곡'을 작곡가와 작사가에게 요청했다. 디스코그라피에 전자음악이 사실상 거의 없는 매직 맨션은 일렉트로닉 트랩을 만들었다. 신예 래퍼인 L.TAK이 작사에 참여했다. 더군다나 "춤조차 그동안 하던 스타일로 하고 싶지 않았다."는 비는 그야말로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은 안무를 선보였다. 결론적으로는 비 자신에게 경계선이 어디인지 깨달음을 준 노래가 되었다.



'자전차왕 엄복동' 개봉 당시 비의 인터뷰 - "획기적인 시도" / 출처: 아주경제


비가 인터뷰를 통해서 "선배고 연차가 높다면 오히려 획기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대목이 '깡'이라는 노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요약해준다. 비에게 '깡'이라는 음악은 "계속해서 도전하고, 새로운 걸 내놓는"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도전적인 안무와 급변하는 곡의 구성, 다소 급진적인 가사... '깡'이라는 음악의 요소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도전이라는 언급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앨범의 다른 수록곡을 들어보면 새로운 도전이 담겨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깡' 작곡팀 매직 맨션이 참여한 곡을 최신순으로 정렬했다 / 출처: 네이버 뮤직


한편 '깡'은 작곡팀 매직 맨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는 건 길의 음주 운전 사건이 주된 원인일 것이라 추측된다. 아쉬운 점은 길의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가 2017년 6월이고 비가 '깡'을 내놓은 시기는 2017년 12월이라는 것이다. 길의 사건이 터졌을 때 곡이 발매되는 걸 재고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런 식으로 '그랬다면 어땠을까'를 나열하면 아쉬움은 끝도 없다.




비의 네이버 TV 채널


비는 최근에 틱톡을 개설했고 챌린지 댄스 영상을 선보였고 네이버 TV 채널에도 운동 관련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했다. 유튜브에도 타바타 운동 콘텐츠 하나를 업로드했지만 앞으로 영상 콘텐츠는 네이버 TV 채널에 업로드하겠다는 공지를 했다. 비의 밈이 확산된, 그리고 지금도 활발한 유튜브를 일부러 배제하려는 의도로 추정이 된다.



'문명 특급'에 나오는 게 지금의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일 수도... / 출처: 문명 특급


이제는 공중파에서 유재석이 '깡'에 관해서 언급한다. 유튜브에서는 당사자가 개최하지 않은 '깡 챌린지'가 자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1일1깡'을 하는 네티즌들이 생겨나는 가운데, '깡'의 주인인 비의 생각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비의 다음 행보가 진심으로 궁금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FvYsy4wE4




주요 참고 자료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37014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1819

https://www.ajunews.com/view/20190308154432590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114544

https://www.youtube.com/watch?v=QMd2mPah18o&t=9s




작가의 이전글 기리보이에게 배우는 꾸준한 창작자의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