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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ckerair Jul 05. 2020

문명특급이 밀레니얼 세대가 사랑하는 콘텐츠가 된 이유

스브스뉴스의 카드뉴스부터 지금의 문명특급이 되기까지 

수많은 연예인들이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에 출연하고 있다. 자칭 혹은 타칭 '2020년 컴백 맛집'으로 거듭난 문명특급은 출연한 연예인 뿐만 아니라 그 연예인의 팬들이 대다수 만족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2018년 2월에 첫 방송을 보인 '문명특급'은 불과 2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금 자체적으로 채널을 개설하여 6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특급'의 구독자 상당수는 밀레니얼 세대인 것으로 보인다. '문명특급'이 왜 유독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가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SBS 방송국에서 탄생한 '스브스뉴스' 채널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공감하고 공유한 스브스뉴스의 시작


SNS나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대세가 되면서 방송국 등 기존의 미디어들도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SBS 뉴스' 홈페이지는 TV 방송에서 전하지 못하는 뉴스를 이미지와 가벼운 텍스트 중심으로 구성한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좋았고 여기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온라인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팀을 구성했고, 그 팀이 바로 '스브스뉴스'다. 2015년에 처음 런칭한 '스브스뉴스'는 자체적인 SNS 채널을 통해 '카드뉴스'와 '동영상' 콘텐츠를 게시하기 시작했다.


스브스뉴스가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된 계기는 '카드뉴스'들이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 바이럴되면서 부터다. 대표적으로 '생리 끝! 행복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는 본인이 '폐경'이라며 우울하게 말하는 엄마에게 '완경'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었다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두는 듯한 '폐경'이라는 표현이 아닌 '완경'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그동안 사회에서 고착화된 인식을 전환시키는 카드뉴스였다. 


이 카드뉴스는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2천회 넘게 공유되었다. 지금 시대에 '공유하기'는 본인의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이들이 카드뉴스를 많이 공유했다. 문제의식없이 두루 사용되던 '폐경'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바꾸자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환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들은 젠더, 세대, 계급, 지역, 학벌 등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그 어떤 세대보다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스브스뉴스의 카드뉴스처럼 한국사회의 문제에 관해서 다루는 콘텐츠를 선호하고 공유하는 경향을 보인다. 



밀레니얼이 고민하는 '차이'에 포커싱한 콘텐츠

https://www.youtube.com/watch?v=O7Wkb0c0ids


스브스뉴스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목하고 공유하는 콘텐츠의 속성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팔도 비빔'은 스브스뉴스에서 거의 처음으로 만든 예능 성격의 영상 콘텐츠다. 서울 출신의 스브스뉴스 패널들과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등 팔도 지역 출신 게스트들이 나와서 지역의 '사투리'를 두고 의미를 맞추는 퀴즈 대결을 펼친다. 패널들이 글자의 형태를 보고 의미를 추론하며 사투리를 맞춰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틀리고 만다. 같은 국가에서 태어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더라도 학습하고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는 크다는 걸 보여준다. 이 새삼스럽게 당연한 사실이 서울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서울 지역의 사람이 쓰는 단어가 한국 사람이 쓰는 '표준어'이자 '한국어'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팔도 비빔'은 이러한 지역 간의 문화와 언어 차이 문제를 예능의 형식으로 전달했다. 영상에는 주로 '신기하다', '놀랍다', '재밌다'는 식의 반응이 많이 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2YqHLXQk50&list=PLbByFhGChrxivjSRvsdJeCDCzQzGA6AcI


'지역 차이'에 주목했던 스브스뉴스는 후속작으로 '세대 차이'를 다룬 콘텐츠를 만든다. 소녀시대 노래의 제목을 비튼 '다시 만난 세대'는 제목 그대로 1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세대의 인물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20대 중후반으로 구성된 스브스뉴스 패널들은 게스트들과 함께 지금 한국사회에서 화두가 되는 토픽을 놓고 이야기한다. 혼전 동거, SNS, 급식체, 패션 등 주제도 다양하다. 각 세대에 속한 패널과 게스트는 특정 주제를 놓고 과거와 현재의 트렌드를 설명하거나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이를 통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각 세대의 생각이나 인식을 대략적으로 확인한다. 이를테면 지금 40대가 갖고 있는 혼전 동거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고, 10대가 향유하고 있는 팬덤 문화는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콘텐츠를 접한 이들은 과거나 현재의 트렌드에 대해서 각자 인식하고 있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공감이나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팔도비빔'과 '다시 만난 세대'는 성격이 대비되는 패널과 게스트를 통해서 '차이'를 부각했다. 대결 구도라는 설정이 예능으로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스브스뉴스가 제작했던 콘텐츠들의 맥락에서 해석하자면 '차이'라는 키워드가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기 때문인 듯싶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패널과 게스트들의 '차이'는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젠더, 세대, 계급 등의 문제는 기득권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득권보다는 그렇지 못한 자의 위치에 가깝기에 고민하고 분노한다. 스브스뉴스는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에 주목해 '차이'라는 내용을 진중한 방식이 아니라 재밌고 섬세하게 담아냈다.



문명특급이 주목한 '노동요'라는 '신문물'

 https://www.youtube.com/watch?v=4SKilSLW4Nw


'다시 만난 세대'는 20개의 에피소드를 끝으로 새로운 시즌을 기약했다. 그리고 2018년에 새롭게 등장한 콘텐츠가 바로 '문명특급'이다. 지금까지 선보였던 '팔도 비빔'이나 '다시 만난 세대'가 패널과 게스트 간의 토크와 퀴즈를 결합한 형식이었다면, '문명특급'은 직접 현장으로 취재를 하거나 화제의 인물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전의 콘텐츠는 트렌드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세대별 인식을 소개했다면, '문명특급'은 직접 트렌드의 중심에 있거나 사회적 현상에 참여하는 인물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그램의 부제목이 '신문물을 전파하라!'는 문장인만큼 진행자 재재는 직접적으로 '신문물'을 체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pPwI_Lo0YY


슬라임, 인스타 감성 사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등 기성세대는 접하지 않았을 트렌드에 집중했다. 기성세대에게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노동요'도 그중 하나였다. sake L이라는 유튜버가 '노동요'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영상은, 우리가 보통 교과서에서 보던,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노래가 아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케이팝 아이돌의 인기곡들을 빠른 속도로 조정한 노래 모음집이었다. 조잡한 듯하면서도 닦달하는 듯한 템포의 노래들을 들으며 많은 이들이 과제나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간증이 쏟아졌다. 민요가 과거 어르신들의 노동요였다면 변질된(?) 케이팝이야 말로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요라고 칭할 만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IGlMlf57ek&list=PLbByFhGChrxgVsu1F_F4CLgk7fJ5Vfnur&index=103


이러한 '노동요' 리스트에 포함된 곡 중에서는 차트 1위를 차지할 만큼 범대중적인 노래들이 다수 있었다. 반면에 모든 이들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매력과 중독성이 존재하는 노래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이상하리만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다소 유치하고 황당한 전개로 진행되는 가사,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욱 중독적인 노래들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마젤토브, 삐리빠빠 등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노래들을 '문명특급'은 '숨어 듣는 명곡'이라고 명명했다. 메이저라 부를 수는 없고 길티 플레져에 가까운, 그래서 그 누구도 대놓고 듣는다고 과시할 수 없는 노래들이었다. 줄여서 '숨듣명'이라고 칭해진 노래들은 어쩌면 음악으로서 감상했다기 보다는 해학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밈에 가까웠다. 누구보다도 밈을 찾아 나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숨듣명'은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가수 당사자들도 의도하지 않은 바이럴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lFQHS91KPY



재재라는 인물이 이끌어내는 게스트와의 케미스트리


문명특급은 이러한 '숨듣명'을 부른 가수나 만든 작곡가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러쿵저러쿵을 부른 파이브돌스의 멤버 은교, 마젤토브와 U R Man(암욜맨이라고 익히 알려진 노래)의 작사 겸 작곡가 한상원을 인터뷰하며 노래 가사를 분석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만들 때의 에피소드를 듣기 시작했다. 이 특이한 노래를 들은 사람이라면 유래가 너무도 궁금해지는 가사나 멜로디에 대해서 묻는 콘텐츠였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만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꺼림칙해 할 수 있다. 지금 노래가 밈으로서 바이럴 된다는 건 일종의 놀림거리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비하'의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특급'은 흑역사에 가까운 노래들을 당사자들이 함께 '자조'하며 즐길 수 있도록 방송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게스트들이 놀림감을 자처하면서도 오히려 방송을 즐기는 건 바로 진행자 재재의 유려한 진행 때문이다. 스브스뉴스가 거의 처음으로 선보였던 예능 콘텐츠 '팔도 비빔'부터 모습을 보인 재재는 높은 텐션과 센스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본인을 '재재'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지는 않았던 터라 댓글에는 '숏컷 하신 분, 너무 재밌어요.'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실제로 재재는 대학교의 학생회장 출신인 만큼 '핵인싸'스러운 붙임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럼없이 케이팝 댄스를 쉴 새 없이 출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또한, 평범하고 뻔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서 게스트에 대한 자료조사를 철저히 했다. 자료조사를 한다는 건 모든 인터뷰어가 해야 할 덕목이지만 재재의 경우 생일이나 별자리 같은 사적인 TMI까지 공부를 해 인터뷰에 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재재의 태도가 게스트들의 능동적인 방송 태도를 만들었다. 문명특급은 '숨듣명' 콘텐츠를 통해서 바이럴 되면서 라이언전, 배윤정, 김이나와 같은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게스트의 폭을 넓혀갔다. 그리고 2020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는 가수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터뷰로 프로그램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https://www.youtube.com/watch?v=y7zZNLm2C9I


프로그램의 성격이 변화했지만 재재와 게스트의 케미스트리가 좋다는 호의적인 반응은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인터뷰나 예능 프로에서는 진행자들이 연예인의 개인사나 가십거리를 캐묻고, 외모를 비하하고,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 애교나 안무를 강요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인터뷰의 문법은 늘 이런 식이었고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존의 방송이 '유해하다'라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문명특급의 진행자인 동시에 PD인 재재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기성 방송과 철저하게 정반대의 인터뷰 문법을 철칙으로 삼는다. '연애, 결혼, 사랑에 관해서 묻지 않고, 싫어하는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애교를 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비하하거나 호통치는 것보다 재치 있는 대화로 웃기는 걸 좋아한다."고 본인이 선호하는 콘텐츠의 특징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철칙과 특징은 재재의 인터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예능의 기존 문법에 가장 큰 피로도를 느낀 건 연예인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예능의 문법에 따라 난처한 질문에 답하고 원치 않는 애교를 해야만 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연예인들의 희생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문명특급에서는 껄끄러운 질문을 받거나 애교나 싫은 행동을 강압적으로 해야 할 염려가 없다. 그래서 그럴까, 문명특급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평소 다른 방송에 출연했을 때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그 연예인의 팬들이 말한다). 스스로 밀레니얼 세대이기도 한 아이돌 멤버들은 즐거워하고, 편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인 문명특급의 시청자들도 편하게 콘텐츠를 즐기기 마련이다.




조금 두서없이 글을 쓰기는 했지만, 어쨌든 스브스뉴스 초창기부터 지금의 문명특급이 있기까지 콘텐츠의 핵심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지 않나 싶다. 밀레니얼 세대의 니즈를 명확히 파악한 제작진들이 만든 똑똑하고 재미있고 건강한 콘텐츠. 이렇게 문명특급과 관련된 글을 쓰던 와중에 문명특급의 '컴백 맛집'을 정리한다는 PD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출연한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 정도로 편했던 아이돌 콘텐츠는 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글의 제목대로 문명특급은 '아이돌판에 균열을 낸 것'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문명특급은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지 모른다. 


https://brunch.co.kr/@hmg2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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