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특급 컴백 맛집을 정리하며
어제 문명특급 컴백 맛집의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티아라 지연, NCT 127, 에이핑크, 오마이걸, 몬스타엑스, 세븐틴, 선미 등 흔쾌히 출연해준 아티스트들 덕분에 좋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다. 당분간 우리는 컴백 맛집 시리즈를 잠시 멈추고, 자체 기획물에 더 힘을 쏟을 예정이다. 6개월간 진행했던 컴백 맛집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사실 나는 연예계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보도본부 소속으로 방송국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고,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 다 하는 팬질을 해본 적도 없다. 브아걸이 나에게 마지막 아이돌이다. 아이돌을 조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매우 생뚱맞은 상황에서 찾아왔다. 생전 처음 보는 어떤 신인 아이돌 멤버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는데 갑자기 내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면 90도로 인사하는 것을 훈련받았다고 느꼈다.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됐다. 한쪽만 하는 90도 인사는 예의와는 다른 문제다. 강하게 말하면 갑-을 관계로 진전될 수 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주머니 속 송곳이 튀어나왔다. 뭔진 모르겠지만 매우 불편한 감정이 들었고, 연예계가 대체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졌다.
아이돌을 주제로 다루기 전에 내게 있는 송곳 같은 불편함은 어디서 왔을까 고민했다.
1. 아이돌은 늘 웃는 리액션을 해야 한다.
2. 상대의 요구에 친절히 응해야 한다.
3. 끊임없이 장기를 보여줘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충족한 아이돌은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본은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봤다. 모의고사 때 5등급을 받다가 2등급으로 겨우 올린 과목이 있다. 당시 선생님께 '2등급이 기본이지'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다한 최선이 기본이었단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았던 기억이 있다. 아이돌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종류의 억울함이지 않을까 공감했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에게는 이 세 가지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1. 안 웃기면 웃을 필요 없다.
2.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한다.
3. 아이돌을 전문 직업인으로 대우한다.
위의 조건이 충족되면 그들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면이 나와도 대중에게 '비호감'으로 인식되지 않게 하는 것은 연출과 편집의 영역이다. 앞뒤 말이 잘못 잘리면 오해를 부를 수 있고, 시청자에게 왜곡된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출연자를 시청자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전달하는 것이 연출자의 역할라고 느꼈다. 컴백 맛집을 제작하며 얻은 감수성이고 덕분에 성장했다.
이런 개인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컴백 맛집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선이 훨씬 많았다. 사내에서 요즘 문명특급은 기획의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지인이 커뮤니티 캡처를 보내줬는데 '아이돌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문명특급'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이 기획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촬영장에서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해주는 아이돌들을 보면서다. 문명특급 촬영은 '뭔가' 달랐다고 이야기해주는 그들 덕분에 잃어갔던 자신감을 다시 충전했다. 무엇이 달랐냐고 구체적으로 물은 적은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이제까지 어떤 방송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말이다.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명특급의 제작진은 작지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노력했다
어떤 아티스트의 매니저가 촬영이 끝난 후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매니저로 일하는 10년 동안 이렇게 편한 촬영 처음입니다."라고. 컴백 맛집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하지만, 아이돌판에 균열은 낸 것은 확실하다. 그 점 하나만은 잘 해냈다고 팀원들과 자축하고 싶다. 다음으로 우리가 균열을 낼 판은 어디일까. 문명특급의 '신문명을 전파하라'는 기획 의도처럼 사회 곳곳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음을 준비하고 싶다.
Side note:
컴백 맛집은 간헐적으로 계속됩니다.
가장 손이 많이 갔던 컴백 맛집 '세븐틴' 편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