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와 후광 그 어딘가
평소보다 일을 일찍 끝마치곤 조용히 내 책상을 둘러봤다. 어우.. 짐이 참 많다. 아무래도 느낌 상 자리 이동을 할 거 같아 우선은 서랍에 있는 명함을 정리했다.
잦은 이직과 외부 프로젝트로 인해 여태 받아온 명함이 엄청났다. 명함을 받아 드니 반가운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누구인 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도 더러 있다. 이렇게 많은 명함 중에서 연락하는 이는 손을 꼽을 정도. 그 마저도 사회생활로 만난 사람이기보다는 친구들이 첫 직장에 들어갔다고 명함을 준 게 대다수여서 모두들 직위가 ‘사원’이다. 처음 명함을 줄 때의 친구의 벅찬 표정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그래,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겠지?
명함들 사이에서 첫 직장의 명함을 발견했다. 불과 몇 년 전의 내 명함이었는데도 참 낯설었다. 지금의 명함과 비교해서 바라본다. 달라진 이름과 CI, 나는 대체 누구일까? 한 때는 이 명함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이 명함이 없어지는 순간 나는 누가 알아줄까?
예전에 프리랜서를 뛰겠다고 만든 내 명함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직장의 소속이란 족쇄같이 느껴지다가도 명함 속 내 이름을 후광처럼 비춰주는 존재다. 참 아이러니.
집으로 가는 길, 전무님과 팀장님이 뒤따라 오시더니 잠깐 손 흔들고 가신다. 처음 이 분들을 뵐 때보다 뒷모습이 조금 더 늙은 게 느껴진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싶다. 지금의 명함은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까. 그래 생각대로 인생이 살아지나, 살다 보니 여기에 있게 되었는 걸.
이제 주말이다. 네네.. 조용했던 김대리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김씨네 맏딸로 돌아갈 시간,
내일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