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Jan 22. 2018

왜 굳이 외국인 개발자를 뽑는가?

문과 출신 개발자의 싱가폴 취업기

싱가폴에서 취업을 해서 2017년 10월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싱가폴에 본격 이주한 지 2달 만이다. 기존 증권사 대비 적은 수수료로 주식 투자를 대행해서 자산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싱가폴 출신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직 직원 숫자가 20명이 조금 넘는 작은 회사지만, 맥킨지출신의 CEO, 골드만삭스 출신의 개발자 등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나가는 싱가폴 업계 1위 회사이다. 그리고 싱가폴, 베트남, 이탈리아, 독일,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 네덜란드,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직원들이 서로 머리를맞대고 치열하게 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싱가폴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산업에서 종사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껏 꽤나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일해봤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한 번도 일해본 적 없는 분야인데, 고객의 돈을 만지고 은행과 함께 일하는업계다 보니 코드를 만지는 개발자들의 뒷모습에 비장함까지 보인다. 아시아에서 금융산업이 가장 발달했다고 평가받는 싱가폴이다보니 금융 산업 관련 회사들도 정말 많고, 기회도 많다.

나는 지난 2년 간 국내외에서 프리랜싱을 하면서 지냈다. 회사에서 독립해서 지내던 2년 간 좋은 점도 정말 많았다. 출퇴근 시간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오늘이 주말인지 평일 인지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짐을 싸서 훌쩍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엇인가 쌓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능력 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싱가폴에서 구직을 시작했고, 정말 너무나 좋은 회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해외 구직은 결코 쉽지 않았고, 정말 많은 회사에 지원했고 많이 인터뷰를 봤다. 지금이야 "아, 이렇게 이렇게 준비하면 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처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싱가폴의 회사 생활도 자체도 정말 큰 도전이다. 일단 영어로만 동료 직원들과 대화한다. (아, 중국에서 온 동료들과 중국계 싱가폴 친구들도 있어서 중국어도 가끔 한다.) 물론 면접도 다 영어로 봐야 했다. 가뜩이나 처음 접하는 금융 산업이라 생소한 개념들이 많은데, 그걸 영어로 듣고 있자면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라서 스칼라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시작해서 거의다 처음 써보는 기술들이라 4년 차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거의 신입 개발자처럼 공부만 하고 있다. 그래도 여유 있게 배우기만 할 수 없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벌써 두 번째 주에 내 앞으로 커다란 프로젝트도 하나 떨어졌다. 이렇게 싱가폴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취업 준비하던 무렵, 힘들고 정신이 없었지만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던 게 있다. 똑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똑같이 4년을 공부했는데, 왜 연봉이 많게는 수 천만 원까지 차이가 나는 걸까?

왜일까? 많은 사람들이 연봉은 개인의 실력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력이 연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무슨 소리냐고? 연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시장의 크기이다. 실력은 그다음 요소이다. 우리가 TV에 전혀 관심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자. 유재석, 강호동 같은 엄청난 몸값을 받는 MC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TV 프로그램이라는 전 국민이 시청하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시장 안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MC가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실력보다 시장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장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왜 똑같은 과를 졸업한 동기들은 수 천만 원의 연봉 차이가 나는 걸까? 그들의 실력이 정말 그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의 연봉을 결정짓는 것은 그들이 대학교 4년 간 배웠던 전문 지식이 아니라 취업한 회사가 속한 시장의 크기, 그리고 회사가 만들어 내는 매출이다.


싱가폴의 개발자 시장


그렇다면 싱가폴의 개발자 시장은 어떨까? 개발자가 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성공한 IT 기업들'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스타트업'이다. 

큰 IT 회사들은 개발자가 만들어내는 서비스를 통해 매출을 만든다. 이런 회사 간의 개발자 채용 경쟁은 매우 치열하고, 이를 통해서 개발자의 몸값을 높여 놓는다. 따라서 좋은 회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채용 경쟁은 심해지고, 개발자는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싱가폴은 거의 대부분의 IT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 본부가 있는 곳이다. 구글, 페이스북, 링크드인, 에어비엔비, 애플 등의 IT 대기업들이 싱가폴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연봉이 높기로 유명한 투자은행들도 개발자의 몸값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싱가폴에 스타트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나는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에 회사를 크게 키워서 차익을 노리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 강국 싱가폴의 훌륭한 대규모 자본 능력은 싱가폴 출신의 스타트업이 빠르게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런 스타트업은 무엇으로 서비스를 만드는가? 스타트업은 주로 개발자를 동력으로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즉, 좋은 개발자를 초기에 최대한 확보하고,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어서, 빠른 기간에 서비스를 매각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스타트업인 것이다. 실리콘벨리 지역에 개발자 몸값 상승을 이끌었던 건 스타트업 열풍 때문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최근에 싱가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회사는 모바일 택시 서비스 그랩(Grab)이다. 동남아의 우버로 싱가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랩은 최근에 2.2조 원을 투자받았다. 이 투자금을 바탕으로 싱가폴에 개발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다른 회사들은 울상이다.


외국의 기술자에 대한 인식


임진왜란을 유럽 학자들은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냐면 임진왜란에 조선으로 쳐들어온 일본군이 당시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을 많이 일본으로 데려갔는데, 이 이후로 일본과 조선의 도자기 기술 수준이 반대로 바뀌었다고 해서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른단다. 사농공상의질서 아래 천대받던 이 도자기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가서 사무라이급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본적으로 개발자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산업이다.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지 않은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와 다양한 윈도우용 프로그램 판매를 통해서 매년 막대한 비용을 벌어들인다. 페이스북도 전 세계 사용자를 연결하고, 그 네트워크를 광고주를 연결하여 광고 수익을 벌인다. 유튜브는 창업한 지 2년 만에 구글에 10년 전 금액으로 2조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판매되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판매하거나 다른 회사에 매각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회사는 개발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최대한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좋은 대우를 제공해서 개발자가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프로그램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의 용역을 파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 개발자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SI 회사들은 프로젝트에 개발자의 용역을 제공하고, 발주사에서 제공해주는 금액에 개발자의 임금을 제외한 금액을 수익으로 가져간다. 용역을 제공하는 회사나 용역을 제공받는 회사나 개발자의 업무 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프로젝트에 따라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부품 취급받는 개발자가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에 소명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무엇이 싱가폴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사실 싱가폴은 인구가 500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쉽게 말해서, 싱가폴이라는 국가 하나가, 서울 정도의 면적에 서울의 절반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싱가폴에 4년제 대학교가 3개밖에 없어서 이 대학교에서 한 해 배출해낼 수 있는 개발자의 숫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싱가폴은 동남아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해왔다. 요즘은 많이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물류와 금융 허브로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동남아 진출을 위해 싱가폴을 찾는다. 그리고 영어가 공용어기 때문에 싱가폴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는 영어권나라에 쉽게 진출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홍콩과 함께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금융 강국으로 소위 '될만한 서비스'에 막대한 자본을 유치하기 쉽지는 강점도 있다.

사업하기 좋은 환경에, 싱가폴 내부에서 개발자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은 싱가폴이 아시아에서 가장 개발자가 일하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만들었다. 싱가폴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을 채용하기 전에 '잡뱅크'라는 사이트에 최소한 2주 이상의 공고를 올려야만 외국인을 뽑을 수있게 허락하고 있다. 아래 링크가 바로 그 사이트인데, 'engineer' 카테고리와 다른 카테고리의 열려있는 자리 개수를 한 번 확인해보시라. 조금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