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늘어나면서 생긴 좋은 변화들
이 글은 따지자면 2016년에 썼던 아래 글의 다음 편이다.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은 점은, 결혼도 출산도 모두의 본인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지 다른 사람이 등을 떠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결혼과 출산 후에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감을 공유하기 위함이지만, 다른 선택을 한 분들께서 나의 행복함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이 누군가에게 결혼이나 출산을 강요하는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혹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거나 혹은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분들이 계신데, '결혼도 하시고 자녀도 있으신데, 아직도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신 걸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미 지난 여러 글에서 너무나 많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는 것에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동네 지나가는 온갖 애들이랑 5분이면 친해질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그와는 전혀 별개로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싱가폴에서 수많은 아빠들이 평일 오후나 주말 저녁이면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을 보았고, 싱가폴의 회사 생활도 아이들을 보내기에 충분한 저녁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라 비록 나는 충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자라지는 못했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충분히 배워가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 출산일에 단이를 품에 안은 순간 그간의 고민은 싹 잊혔고,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 되었다. 물론 그간의 오랜 고민이 있었기에, 결정을 내리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더 노력하게 되었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리도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도 든다. 만약 예전의 나와 비슷하게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생각보다 아이는 내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서 그 이전의 삶의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살아가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단이는 내 인생의 큰 축복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전에는 퇴근을 하면 아주 잽싸게 집으로 날아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9개월 넘게 재택을 하고 있는 지금은, 미팅이나 회사 일로 정신이 없다가도 잠깐 밖에 나가서 단이랑 놀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가득 충전된 상태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육아라는 것이 장밋빛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어서, 특히 출산 후 초기에 상주 도우미 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단이를 보다 보면 녹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같이 노는 맛이 커지고, 말도 점점 알아들어서 키우기 편함이 느껴진다.
아내와는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이미 서로에 대해서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한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정말 깊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것들을 함께 계획하고 저지르면서 본격적으로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 시간들, 경험들을 함께 나누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이해받게 되었다.
세상에 누구보다 나를, 가끔은 나보다도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해방감을 준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걸 개발자인 나의 영향으로 '알고리즘을 하나 해독했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결혼 7년 차에도 여전히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었던 '알고리즘'을 발견하고 해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피상적으로 상대방의 행동 습성에 대해서 인지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그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으로 파악을 하고 나면 같은 이유로 배우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각자의 많은 결정의 순간에서 함께 고민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왜 그런 결정을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이가 없을 때 우리 부부의 삶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의 삶 같았다. 칠레로의 이주를 준비했었고, 상해와 발리에서 살았고, 최종적으로 싱가폴로 이주했다. 싱가폴로 이사를 오면서도 싱가폴에서 평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부부는 여행자 같은 마음으로 여기저기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물론 우리 부부의 두 발이 어딘가에 머물지 못하고 항상 떠있었기 때문에, 어디든 함께하는 우리 부부의 관계는 그만큼 더욱 돈독해졌지만, 항상 '다음은 어디인가?'라는 불확실성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단이를 낳기로 결정하면서 우리 부부의 인생에 처음으로 단기 계획들이 아니라 장기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출산 비용, 자녀 교육, 주거 계획 등 단기적으로 계획할 수 없는 일들이 인생에 계속 들어오면서, 이전까지는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라고 결정을 내려왔던 것들이 더 이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나도 한 때 책임감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피하던 시기가 있었던 사람으로, 그 기분이 어떤 감정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감이라는 것이, 그로 인한 긴 호흡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인 시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지루함으로 보일 수 있을 삶들도 이제는 단단함이자 지켜야 할 것이 있는 확신이 있는 삶으로 보인다.
아내는 출산을 하고 한동안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직장이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앞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활용하거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을 보내고 출산을 하기에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출산 이후에는 이제 본인의 커리어를 어떻게 쌓을 것인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관심 있는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을 만나서 여러 가능성이 있는 포지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열심히 면접을 준비해서 원하는 회사에 원하는 포지션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출산하느라 회복도 다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이직을 준비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건 참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아내가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열심히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이고, 가족 간에는 가족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가족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를 본다. '너는 엄마인데, 이런 것도 하기 싫어하냐?'라는 이름으로 출산을, 육아를, 그리고 온갖 집안일을 강요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보통 가족에게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그 방법을 같이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결정을 하도록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가족의 이름으로 서로 희생하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고는 하는데, 단이는 우리 부부를 보면서 '희생하면서 살았던 엄마, 아빠'보다는 '자기 꿈을 좇으며 신나게 살았던 엄마, 아빠'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임신과 출산 기간을 지나면 농담이 아니라 세상 온갖 아기들이 이뻐 보이고, 길에 다니는 수많은 임산부 분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인류애가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자라게 될 사회나 환경에도 더 관심이 생기게 된다. 내가 아무리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도, 내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어려우리라 믿는다. 결국 세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자녀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던 시기에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 들이다.
지난 글에서도 같은 소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4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또 다른 걸 하나 생각해보면 좋겠다. 주위의 친구들이 이미 제법 많이 결혼을 했고, 또 몇몇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결혼을 하기 위한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무래도 예전에 비해서 이미 사회생활도 몇 년 해서 경제적인 수준도 많이 나아졌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난다는 건, 어느 두 사람이 되었든 서로 맞춰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는 쇼핑몰에서 전시된 공산품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건너뛰고 내 '조건'에 맞는 사람이 내 '기대'에 맞는 행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건강하게 흘러가기 어려운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남편 혹은 아내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조금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나와 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서,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 있는 큰 차이를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관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