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같이 살면 좋은 점
한국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부모님 집이 아니라, 혹은 혼자서 살던 사람이라면 자취방이 아니라 누군가 함께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에도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라면 보통 결혼하기 전에는 외박만 해도 난리가 나는데, 결혼만 나면 선을 딱 긋고 어떻게 이렇게 새 집에 들어가서 같이 살게 되는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해서 만나게 되면 다르게 성장하던 두 사람의 '세계'가 겹쳐지게 되는데, 단순히 세계가 겹쳐지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겹쳐진 부분에서 엄청난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거의 인간관계의 빅뱅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작용은 두 사람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꿔주기도 하고, 반대로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히 데이트를 하는 관계를 넘어서 한 공간에서 같이 산다는 것은 훨씬 더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남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기 전에 거의 1년에 가까운 기간을 함께 살았다. 매일 함께 잠에 들고, 눈을 뜨는 생활 속에서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가족과도 쉽지 않을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더 좋은 사람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감사하며 결혼을 결심했다. 장모님은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을 지지해주시면서 "만약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이렇게 서로 사랑한 시간이 너희를 성장하도록 도와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어른'으로부터 들었던 가장 현명한 이야기였다.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기 전 이미 수개월을 함께 했고, 그 이후에 결혼식장에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신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물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겁나지는 않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나는 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많이 느끼고 있었고, 예상대로 결혼을 했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돌변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주위 시선 때문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한 번 같이 살아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서 나는 비로소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비유가 좀 이상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하기 전은 한국에서 남자라면 한 번쯤 느꼈을 입대 전 느끼는 '모든 것의 유예'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1~2년은 남학생들에게는 대혼란의 시기이다. '입대하기 전'이라는 이유도 어떤 행동도 용납되는 해방의 시기이기도 하면서, 입대 전 무엇을 쌓아도 제대 후면 원점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무엇인가를 쌓아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입대 전 흥청망청 놀다가 입대하는 날 학사 경고를 받았고,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정신 차리고 나의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그 어떤 좋은 책도,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도 다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 전의 시간들이 입대 전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배우자가 있고, 앞으로 내가 꾸려갈 가정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사람과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심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결혼 전에도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지만, 고민의 깊이가 달라졌달까.
다른 한 편으로는 경제적 생활수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결혼 준비를 하는 시기는 거의 한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소비를 경험하는 시기다. 웨딩 스타트업에 잠시 다녔던 부인님 이야기로는 "'웨딩'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같은 서비스가 가격이 3~4배에서 10배까지도 뛴"다고 한다. '인생에 한 번 하는 결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은 웨딩 시장을 마진 남는 장사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서울 집값이 좀 비싼가. 30살에 결혼하면서 집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사실 전세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전세 집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게 부모님의 도움으로 두 사람을 위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일견 힘들어 보이는 이 결혼 준비 과정이 경제적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결혼 준비하다보면 몇 십 만원은 정말 돈 같지 않아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결혼 전 1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우리도 결혼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고등학교까지 용돈 받아 쓰던 사람이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같은 차이랄까.
결혼을 하고보니, 결혼을 생각하는 친구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들이 보인다. 우리 부부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친구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종종 물어오는 편이다. 워낙 사람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연애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누군가의 결혼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부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조언을 해줄 때는 조심하는 편이다. 다만 우리 부부가 완벽히 동의하는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자면, 우선 배우자 될 사람의 부모님을 잘 살피라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자식은 부모를 굉장히 많이 닮는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결혼 생활은 부모님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더 가까이에서 뵙고 보니 한 사람에게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부인도 우리 부모님의 언행에서 가끔 나의 지난 언행을 짚어줄 때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부분에서 부모님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다른 조언 하나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결혼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결혼을 하라는 것이다. 신혼집의 크기, 자동차의 종류, 예물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만들어주는 것이 결코 아닌데,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하고 '친구는 이렇게 결혼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점점 더 욕심이 난다. 그런데 그 자라나는 욕심이 가깝게는 배우자에, 그리고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결혼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순간 나는 그것이 충분히 행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그 흔한 웨딩 앨범도 만들지 않았다. 그 무겁고, 어디있는지 찾기 힘든 웨딩 앨범 대신 요즘 흔한 클라우드 서비스에 올려놓고 종종 열어본다. 남들이 다하는 것을 따라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너무 행복하다. 두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 부부는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상해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 삶이 너무나 소중하고 즐겁다.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두 사람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