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Oct 20. 2016

남자와 여자? 역할극은 피곤하다

서로를 성역할로 옥죄지 마라

스페인에서 살 때 처음으로 "여자의 짐을 들어"주는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스페인 친구 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북유럽에서 살다 왔다는 한 스페인 친구는 북유럽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단다. 왜냐면 여성도 짐을 들만한 충분히 육체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짐을 들어주는 건 여성의 육체적 능력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거다. 이에 반해 당시 30대 후반의 비교적 나이가 있던 친구는 그런 행위는 여성에 대한 과보호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반박했다. 나에게는 이 날은 나에게 "남성이 여성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라는 그전까지 당연하게 느꼈던 '매너'가 토론의 주제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아침에 장을 보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학원에 갔던 어느 날 수업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반 여자인 유럽 친구 하나가 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괜찮다."라고 말했고 그 친구는 "Macho Man!"라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떠나던 것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에 반해 지금 살고 있는 중국의 남녀 관계도 매우 특이하다고 느끼고 있다. 상해에 와서 길을 걷다가 느낀 점은 남자와 여자가 차려입은 수준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여자는 풀메이크업에 제대로 차려입었는데, 함께 데이트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성은 제대로 감지도 않아 보이는 머리에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무슨 이런 나라가 있나 했다. 대신 여자는 데이트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는 번듯한 직장에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까지 2대가 모아서 집 한 채를 해올 수 있는 게 능력이고, 여자는 어린 게 능력이란다. 북경이나 상해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경우 25살이 넘으면 잉녀(剩女)라고 '남겨진 여성'이라고 불린단다. 그래서 부모들의 지상 과제는 보다 빨리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 상해 인민광장에 가면 자녀의 사진과 프로필을 적어놓은 팻말을 들고 자녀의 배우자를 찾는 어마어마한 수의 부모 무리를 볼 수가 있다.


'남자다운' 남자, '여성스러운' 여자



최근에 <맨박스>라는 책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고, 조만간 읽어보려고 계획 중이다. 중요 내용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에게 강요된 "남자다움"이라는 것이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감정의 감옥 속에서 감정을 통제받도록 강요하고 반대로 "여성스러움"을 열등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성답지 않은' 자신의 남성성을 계속해서 학습하고 강화한다.


남자는 여성 대신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육체적 우위를 입증하고, 결혼을 하면서 집을 해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자신의 경제적인 우위를 다시 확인한다. 여기서 확인된 "경제적 우위"는 출산이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경제 활동을 중단하게 만들고, 여성의 경제적 종속을 강화시킨다.



한편 최근에 본 위의 <부부생활>이라는 웹툰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여성스러울 것"을 그리고 "부인 다울 것"을 강요받고 마음 깊이 내재화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웹툰의 내용은 평생 전업 주부 아래서 자란 작가가 결혼 후에 남편의 아침을 차려주지 않아서 '뭔가 충분히 부인답지 못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같이 일하는 처지에 왜 한 사람은 밥을 차리고, 다른 한 사람은 차려진 밥상을 받는 역할이 나뉘어야 하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요즘 고학력으로 길게 공부한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의 시기를 지나면서 경력 단절을 겪는 것을 지인을 통해서 보거나, 혹은 브런치의 글을 통해서 접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라고 자신의 경력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을까. 다만 "좋은 엄마" 혹은 "좋은 부인"이라는 사회에서 강요하는 그녀들의 역할이 그녀들이 그런 모진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답지 않은' 남편, '여성스럽지 않은' 부인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어떠한 성역할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논쟁을 통해서 결정한 것은 아니고, 서로 여러 나라를 살면서 사회에서 부여한 성역할에 맞춰 사는 게 피곤하다고 느꼈고 우리 부부에겐 꽤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특히 부인은 대만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던 시절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스페인 사람을 만났는데, 데이트하던 남자가 집에 데려다준다니까 "난 두 발 달려있다"라고 말하고 혼자 집에 가던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중국에 오고 난 이후로 가스비를 낸 역사가 없다.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둘 다 일하느라 정신없기 때문에 저녁은 밖에서 먹거나 시켜 먹고, 아침은 전날 미리 사놓는다. 점심은 각자 해결한다. 둘 다 일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식사를 책임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청소는 일주일에 하루 청소하는 중국인 아주머니를 부른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청소하고 가면 내가 매일 1시간씩 청소하는 것보다 깨끗하다. 그렇게 생긴 시간으로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한 사람이 가정의 경제적인 책임을 전적으로 부담하기보다는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도록 출산 후에도 지금처럼 둘 다 경제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부인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첫 회사를 금방 그만뒀다.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공부하는 6개월 동안 부인은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의 새로운 도전을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하고 부인이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배워보고 싶었던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그녀가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작은 셀프 웨딩을 하기로 결심했다. 집도 두 사람 능력 닿는 대로 준비할 예정이었다. 우리 부모님께서 일반적인 결혼식을 하기를 원하셔서 처음에 꿈꾸던 작은 결혼식이나 두 사람 손으로 작게 시작하는 집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는 두 사람이 내리는 모든 결정에서 두 사람 중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상해에는 부인의 취업이 결정되고 오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하기 전부터 외국에서 사는 삶을 꿈꿔 왔다. 개발자인 나는 상대적으로 어느 나라에 가서도 일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반해, 마케터인 부인은 외국에서 일한 경력 없이 외국에 바로 나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상해에서 부인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중국에서 마케팅을 하는 경험은 모든 글로벌 기업이 중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 어디서든 살더라도 일을 구하는데 좋은 경력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한창 프리랜싱을 하던 중이었고, 중국에서 좋은 가능성을 보고 현재 사업 중이다. 이렇게 우리의 결정은 따로, 또 같이, 그러면서도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결정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이 혹은 사랑이 서로에 대한 속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와 함께 있기 때문에 좀 더 우리 다울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믿는 사랑이다.




메인 사진은 http://photo.naver.com/user/lovemax0121 에서 가져 왔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사진 사용에 문제가 된다면 프로필의 이메일을 통해서 알려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