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
그 날을 기억한다. 해가 기울면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되는 10월의 저녁, 우리는 함께 마포대교 위에 있었고, 그날 이후 우리는 항상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그 날로 이제 3년, 그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고도 두 번의 여름을 함께 보냈다. 이제 우리 사랑은 더 이상 시큼하고 풋내 나는 그런 과일이 아니라,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멀리서도 코끝으로 느껴지는 그런 잘 익은 과일이 되어가고 있다. 해가 천 번쯤 뜨고 지는 시간을 거의 매일 함께 하면서 때로는 나보다 상대방이 나와 나의 감정에 대해 더 잘 느끼고 잘 이해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즐거운 날이면 같이 손을 잡고 길을 걷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면 같이 즐거운 이야기로 서로를 어루만진다.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 한마디로 나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게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웃는다.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사랑은 바닷물처럼 사람 내면에 쌓여 희망이라는 배를 띄우고, 인생이라는 여행이 흐를 수 있게 해준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나의 인생을 밝게 가득 채워주다는 것이다. 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하면서 정말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받았다. 그녀가 나에게 준 것은 혼자 있었더라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는 환한 미소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배웠다. 내가 '동물적 귀여움'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귀여움은 나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웃게 만든다. 땅 밑으로 빠져드는 어느 날도 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보면 저절로 나오는 미소에 그런 기분이었는지 조차 잊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사람의 행동과 마음이 정말 향기로울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아무런 능력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나와 함께라면 괜찮다고 보여주었던 믿음은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부인의 가족을 만나면서 너무나도 훌륭한 새 부모님과 두 명의 여동생을 얻었고, 역시나 너무나 좋은 부인의 친구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여행도 참 많이 떠났다. 이탈리아, 발리, 싼야, 오사카, 동경, 교토, 대만, 스페인, 포르투갈, 베트남, 코타키나발루 그리고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국내 여행지들을 다니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이 풍경을 전혀 다르게 바꿔놓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1년 가까이 살았던 스페인과 종종 여행을 갔던 포르투갈도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너무나 달랐다. 공기에서는 단 내음이 났고, 새파란 하늘은 분홍빛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요즘도 그녀는 여전히 나와 함께 하는 더 행복한 시간을 고민한다.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상해의 여러 맛집을 검색하고, 휴가 일정이 정해지면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먼저 묻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문자 속에서 나를 생각하는 따스함을 느낀다. 회사 동료들과 대화 속에서 항상 나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아서 종종 저녁 식사에 초대되곤 하고, 가끔 점심 같이 먹으러 찾아가는 부인님 회사에서 회사 동료들이 마치 같은 직장 동료인 것처럼 반겨주기도 한다. 군대에 있을 때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기분을 느꼈는데, 그녀와 함께 있으면 세상은 우리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돈다.
나는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그날 그녀가 얼마나 밝게 빛났었는지, 우리가 연인이 되던 그날 그녀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정말 소중한 것은 오히려 잊기가 쉽다. 가을방학이 부른 <근황>의 가사에서처럼 우리가 함께 하는 "만남이라는 사치"가 얼마나 눈부신 사치인지 곱씹고 다시 또 곱씹는다.
최근에 브런치에 올라온 14개월째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는 한 여자의 글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남편의 주재원 파견지가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상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최근 성공을 위한 나의 노력이 결국은 우리 부부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당연한 것은 없다. 감사한 게 있을 뿐. 나는 오늘도 그녀가 내 옆에 당연히 있다는 "사치"에 너무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