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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의 기술 이은영 Sep 16. 2016

남자에게 고마울 때

당연한 것은 사실 당연하지 않다

결혼 6년 차가 되던 남편은 주재원 발령을 받아 상해로 떠났다. 그렇게 한국에 홀로 남아 회사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삶이 시작된 지 꼬박 14개월째이다. 어느 날 장난기 가득한 후배 녀석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선배님 싱글 라이프로 돌아온 소감이 어떠신지요?

나는 대답했다.

싱글 라이프란 단어는 말이야, 내 상황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 혼자 키우는 싱글로서의 삶이 어떠냐고 다시 물어봐 줄래?


5살짜리 가은이는 분명 여자 아이지만 웬만큼 활동적인 남자아이 둘 정도의 에너지를 지나고 있는 신비한 아이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긴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면 설렘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온다.


5일 연휴 동안 애랑 뭐하고 놀지?


세상에서 어디 갈지 검색하고 음식점 찾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이제 그런 것들을 대신해 줄 남편이 내겐 없다. 정확히 말해 한국에 없다. 혼자 있으면 무엇이 문제겠냐만은 나는 5살짜리 슈퍼파워 작은 녀석과 5일을 보내야 한다.


남편: 은영아, 뭐 먹고 싶어?

나: 분위기.

남편: 음.... 뭐라고?

나: 분위기라고.

남편: 분위기? 음... 그냥 집에서 먹자 ^^(함박웃음. 하도 천진하게 웃어서 더 미웠다.)


물론 그가 있었을 때도 주말 동안 긴 연휴 동안 무엇을 할지 잘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주말 계획 때문에 참 많이도 다퉜었다. 남편이 세우는 계획은 언제나 성에 차지 않았다. 음식점은 왜 이리 맛이 없고 맨날 가는데만 가고 재미난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1년째 혼자 계획을 세우고 아이를 먹이고 놀이를 하다 보니 이제 그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아이와 대형 쇼핑몰에 위치한 키즈카페에 다녀오는 길. 2시간이나 놀았건만 20시간도 놀 수 있는 슈퍼파워 꼬마 아가씨는 울고 불고 가기 싫다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겨우 들쳐 매고 주차장으로 왔지만 이.럴.수.가

차를 어디다 세워 놨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짐을 꺼내고 차 문을 잠그고 주차위치를 기억하는 것은 항상 남편의 몫이었으니까. 없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모를 수밖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어디다 쓸지 도통 모르겠는 남편. 그가 자리를 비운 후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참 고마운 게 많다는 것을.


[남자에게 고마울 때]


주차장 자리 기억해 줄 때

좁은 자리에 주차할 때

맛없는 돈가스 먹을 때

차에 유모차 실을때

돗자리 접을 때

잠든 아이 혼자 안을 때

무거운 거 들 때

가방 들어 줄 때

길 찾을 때

운전할 때

전세 연장할 때

애한테 힘으로 밀릴 때

주차 아저씨가 욕할 때

커피 마시고 싶을 때

줄 설 때

유모차 밀 때

유모차 들 때

주말에

연휴에



추석 연휴 3일 차는 광진구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 넓은 곳에 이른 아침부터 있다 보니 배가 고팠다. 정성스럽게 아이 도시락과 간식은 챙겨도 내 것까지 챙길 여유는 없으니까. 동물원 입구 북적이는 식당에서 돈가스를 하나 시켜 허겁지겁 먹노라니 콧등이 시큰 거렸다.


둘이 있었으면 이런 거 말고 맛있는 돈가스 먹으러 갔을 텐데


그동안 유모차 한 번 접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남편이 했었으니까. 유모차가 이렇게 무거운 줄도 몰랐었다. 그가 했었으니깐. 목이 마르면 물을 사 오고 슈퍼 커피 대신 커피 전문점 카페라테를 사 왔었다. 난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실 당연한 것들은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계속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여길뿐

옆에 있으면 게다가 계속 있으면 그리고 그게 오래되었다면 너무 당연하다.

너무 당연하다 못해 싫고 점 점 불평이 는다.


이것도 못하고 저게 부족하고 남들은 잘하는데 내 남편은 너무 모자라 하며 말이다.


없어보니 알겠다.

일상 속 작은 것들 조차 에게 참 고맙다는 걸 말이다.


남자라고 왜 짐이 안 무거울까
남자라고 좁은 곳에 주차하는 것이 왜 안 어려울까
남자라고 왜 피곤하고 힘들지 않을까
남자라고 왜 귀찮고 싫은 것이 없을까

남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그냥 해주고 있었다. 문득 남편한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것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일상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면
신기하게도 참 많은 것들이 고맙게 여겨진다


매력 그 이상의 매력 글램의 9번째 습관은 다름 아닌 ‘감사’이다. 어쩌면 감사의 정의는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가 아닐까? 이 곳 어린이대공원의 많은 아빠들이 부인과 자녀는 먼저 들여보내고 1시간을 기다려 주차를 하곤 한다.

이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참 고마운 일이다.


빛나는 사람들의 10가지 글램 습관
1. 영양 2. 피부 3. 바디 4. 헤어 5. 물 6. 공기 7. 명상 8. 학습 9. 감사 10. 나눔


감사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 자체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까. 가방 들어주는 남자 친구 짐 드는 남편 그거 하나만으로 참 좋은 남자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감사한 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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