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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의 기술 이은영 Sep 17. 2016

네가 부족해서 그래

나는 충분하지 않아

우리들은 뭔가 늘 부족하다고 늘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산다. 



난 늘 부족해

잠이 부족해 
시간이 부족해 
돈이 부족해 
능력이 부족해 
사람이 부족해 
기회가 부족해 


난 충분하지 않아

충분히 똑똑하지 않아 
충분히 준비되지 않아 
충분히 예쁘지 않아 
충분히 날씬하지 않아 
충분히 성실하지 않아 
충분히 성공하지 않아 
충분히 좋은 사람이지 않아
충분히 돈이 많지 않아 
충분히 배우지 않아 


내가 부족해 그래

내가 충분하지 않아 그래

늘 그래

...

그래서 힘들어



얼마 전 비주얼 싱킹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첫 시간은 교육생들끼리 인사도 하고 가볍게 분위기를 풀 수 있는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자기를 일상생활 속 가까이 있는 물건을 이용해 그려보고
그 그림을 통해서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


비주얼 싱킹 교육답게 그림 자기소개 미션이 떨어다. 어림잡아 입사 6개월 차 신입 직원부터, 대리, 과장, 부장급의 다양한 연령대. 그리고 싱글, 갓 결혼한 새댁, 아이를 셋 둔 워킹맘까지 참 다양한 사람이 모인 워크숍이었다. 직급부터, 직업의 종류, 결혼 여부까지 이 교육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을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간단한 호구조사에 이어 사람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들의 자기소개 그림들은 이랬다.


깨진 유리잔
망가진 고무 대야
금이 간 핸드폰
엉망진창 쓰레기통
집으로 가는 길이 막힌 집
더 이상 전원을 꽂을 수 없는 콘센트


조금 전까지 뭐 하나 같은 거라곤 없던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공통점이 하나 생겨 버렸다. 

지금 우리 모두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


왜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우리의 자기소개를 들은 강사님은 본격적인 강의를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교육은 무슨 교육. 
우리 다 같이 짐 싸서 술이나 마시러 가죠.
다 가방 싸요.


그랬다. 우리들은 모두 다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그 날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다들 나름 이름 있는 기업에 다니는 한창 일할 나이의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꽤 값나가는 교육을 들으러 올 정도로 성장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생긴 것도 다들 멀쩡했고 딱히 문제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하나 같이 깨져있고 망가져 있고 갈 길을 찾을 수 없으며 늘 부족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교육을 시작하기도 전에 중요한 걸 배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빠짐없이 모두 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린 트위스트(Lynne Twist)의 세상에서 제일 큰 거짓말 '부족한 느낌'에서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자.


내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맨 처음 하는 생각은 '나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어.'이다. 두 번째로 하는 생각은 '나에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라는 것이다.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은 우리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의문을 품기도 전에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우리가 뭔가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설명하고, 불평하고, 걱정하면서 흘려보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발이 방바닥에 닿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문제가 있고, 남보다 못하고, 뭔가를 갖지 못한 사람이 된다. 잠자리에 들 무렵에도 우리의 머리 속은 그날 하루 동안 얻지 못한 것들과 끝내지 못한 일들로 뒤죽박죽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짐처럼 짊어진 채 잠이 들고, 그 부족한 느낌의 잔상과 함께 깨어난다. (...) 이러한 '내적 결핍'은 우리의 질투심, 욕심, 편견, 삶과의 투쟁 한가운데서 생명을 유지한다. 


이 글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진짜 부족한 게 무엇인지 말이다. 성공이, 명예가, 인정이, 돈이, 관계가 부족했던 게 아니다. 우리에게 진짜 부족했던 것은 내적인 것이었다. 내적 결핍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내면을 충만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던 과도한 자기계발 열풍은 사람들의 내적 결핍을 오히려 부추겼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성공학/열정학 등의 강의 열풍은 결국 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너의 책임이란 메시지를 자신도 모르게 주입시켜 버렸다.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재능과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아무것도 그걸 막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문제는, 정말 우리 사회가 위로 오를만한 사람이 올라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아주 고약한 생각까지도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의 밑바닥으로 갈 만한 사람들이 밑바닥으로 가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에서의 위치는 우연이 아니라 각자가 자초한 마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패의 충격은 더 가혹해집니다. 아시다시피 중세 영국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불운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행운의 축복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란 거죠.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최하층의 사람을 만나면 이들을 몰인정하게도 "실패자"라고 부릅니다. 불운한 사람과 실패자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죠. 이는 지난 400년간 사회가 변화하였으며, 삶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변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있죠.
Alain de Botton: 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


알랭 드 보통의 2009년 TED 강연은 지금까지도 내게 강력하게 기억되고 있는 강의다. 퇴근길 이유 없는 눈물, 함께해도 텅 빈 허전함, 늘 옆에 있는 외로움의 원인을 드디어 알게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누가 내게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서점의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며 오히려 자존감은 낮아지고 있었다.

남들이 한 것을 못하는 것은 결국 모두 나의 책임. 네가 부족해서 그래. 루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그것은 온전한 나의 책임이었다. 빗나간 자기계발 열풍의 폐해이며 수많은 강사들이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동기부여 강사들은 부자가 되었지만 그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대로니까. 강의를 들을 때는 따뜻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현실은 춥고 두렵기만 하다.



어떻게 우리는 '네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내면적 결핍을 이겨낼 수 있을까? 교육시스템이, 이 경쟁사회가, 혹은 과도한 자기계발 열풍이. 무엇이 그랬건 나는 더 이상 탓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 내면적 결핍을 만들었건 그것을 풀어야 할 몫은 내게 있으니까.


첫 째,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신 이미 난 충분해 라고 말해 보자. 

주기적으로 내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짧은 명상시간을 통해 그렇게 해 보자. 명상은 내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고 난 충분해라는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이것이 명상이 매력 그 이상의 매력 글램의 7번째 습관인 이유다. 나와 내 내면이 직접 만나야 내적 결핍을 막을 수 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대신 이미 난 충분해 라고 말해 보자
이미 난 충분하다 이 모습 그대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이다


둘째,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는 사람을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 주자.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 하는 마음을 그런 일은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에게 좀 관대하고 따뜻해지자. 타인에게 따뜻하고 나를 엄격하게 대하라는 자기계발 서적의 말을 무시해 보자.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충분히 애쓰고 있다. 그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자.


셋째, 사회로부터 남들로부터 주입된 메시지가 아닌 나의 생각으로 나의 기준으로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자. 

나는 어떤 성공을 바라고 있는가? 내가 바람 하는 그것은 내가 스스로 정의한 성공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든 내게 주입된 성공인가? 꾸준한 자신 내면과의 대화 없이는 주입된 메시지에 맞추는 삶을 살며 스스로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자.




네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생각은 결국 나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한 나의 책임이고 실패를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 살아있다는 불완전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충분한 사람이다. 이것은 가족이 배우자가 지인이 친구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내가 나의 내면에게 말해 주어야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부족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나니까.

이 세상에 단 한 명 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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