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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세 Jan 29. 2021

나를 방치하지 않으리라

[잿빛일기 5] 나의 욕망을 찾으러 떠나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요즘 시국엔 어림없다. 올해도 쉽지 않아 보인다. 독서나 필사로 대신 훨훨 떠나보는 상상이나 해볼까.   


작년 연말 홀로 여행을 떠났다.      

나를 찾으려고 떠난 여행

나를 버리려고 떠난 여행


아무 생각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 아니 길도 아닌 가시덤불을 헤쳐서 산을 올랐다. 한 발 디딜 때마다 땀과 가시가 엉켜붙는 듯 했다. 앞에는 곳곳에 나무가 가로막고, 뒤에선 누군가 발을 붙잡는 듯 몸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정상으로 올라갔다. 땀범벅이 된 몸에서 외투를 벗겨내고 갈대에 드러눕는다. 하늘을 본다. 푸르다. 시원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이렇게 좋은데, 혼자라도 괜찮은데, 나는 뭘 붙들고 있었을까

뭘 잡고서 불안을 떨치려 했을까. 예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남탓-과거-자책-분노-억울-후회-우울-불안-무기력.


이렇게 기계적으로 연결이 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인데. 그대로 두면 되는데. 나는 화살을 이미 맞고, 또 맞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은 빨리 가는데, 의욕이 없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하기 싫다. 이런 말장난 같은 여정 속에 나는 들어와 있다.      


하지만 확실히 깨닫는다. 더 이상 나를 비바람, 폭풍우, 추위에 방치하지만은 않으련다. 따뜻하게 안아주련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그러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나의 욕망,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지도. 그러고 나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욕망도 좀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떠나고 싶다. 그 전에 걷기라도 좀 해보자. 바닥을 치고 나면, 이제 다시 가야 하니까. 


정호승 시인의 시 <바닥>의 일부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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