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일기 4] 삶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면
늦었다. 서두르자. 발길이 바쁘다. 조금 만 더. 정시 도착이 간당간당하다. 5분만 일찍 나올 걸.
출근길은 누구나 바쁘다. 왜 그럴까. 신기한 게, 수능시험일 출근시간을 한 시간 늦춰주어도 여전히 바쁘더라. 직장인은 다 그런가. 하기야 출근길이 데이트 약속처럼 설레어서 서둘렀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아무튼, 오늘도 정시출근하려면 아슬아슬하다. 아니, 이미 불가능해졌다. 눈썹을 휘날리며 사무실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붙잡는다. 바쁜데 누구야.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선배다. 그것도 과장급 관리자. 나이는 같지만, 성별도 직급도 다르다. 나보다 훨씬 일찍 들어왔다. 다만 대학 때 (각자의 학교에서) 같은 성격의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경험으로, 몇 차례 서로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고 그 후로도 아주 가끔씩 밥을 먹기도 했다. 나에게 가끔씩 응원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일터가 달라서 수년간 볼 수가 없었다가 최근 다시 같은 건물에 출근하게 됐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죠? 호호. 코로나 때문에 같이 밥 먹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네요. 마침 오늘 새로 생긴 빵집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요.”
재차 권유하는 선배의 말에 망설이다 시계를 봤다. 이미 정시출근은 글렀다. 어차피 1분 늦으나 10분 늦으나. 커피나 마시다 가자. 내 눈치를 살피던 선배는 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 인생을 고민하지 않고 대충 사는 사람은 번아웃이 오지 않아요.”
이 말을 하기도 전에도, 후에도 선배는 쉴새없이 나에게 종교 이야기, 승진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했지만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저 문장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선배와 빵과 커피를 나누면서 대화를 했다. 모처럼,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농을 주고 받았다. 출근 전에 이미 지쳐있던 나는 진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은 건>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노래 가사 번역 필사
커피집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것도 오랜만이다. 바쁜 아침 출근길에 마신 커피는 향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 의미있는 것만을 찾는다는 구실로.
문득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일본 노래 <내가 죽으려고 마음 먹은 건>(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죽음만 생각하게 된 건
분명 삶에 내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야.”
(死ぬことばかり考えてしまうのは
きっと生きる事に真面目すぎるから)
삶이란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의미있는 삶이라는 게 뭘까.
요즘 떠올려보는 생각이다.
문득,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이 있다.
깃털처럼 가벼워지면 훨훨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너무 무겁다. 몸도, 마음도.
나, 그동안 정말로 열심히 살았던 걸까.
(사족 :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은 건>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노래 가사 번역은 직접 했습니다.
혹시 번역의 정확도나 오류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