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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세 Dec 30. 2020

흥분되는 일을 찾고 싶다

[잿빛일기 3]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인생에 대한 모독

출근 길 안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길을 뚫고 사무실을 가야 한다. 불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헤쳐가야 하지만, 불안함보다는 기대감이 앞선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며칠 휴가를 내고, 걷고 또 걸었다. 아, 이렇게 좋구나. 하늘을 보고, 바다, 산, 들판, 꽃, 바람, 갈대. 이런 것들을 몸으로 느끼고 있노라니 마음이 잔잔해지더라.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걷고 보고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돌아갈 곳이 있지. 휴가 후 다시 출근하니 정체모를 불안감이 슬슬 올라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디든 눕고 싶고, 쉴 곳을 찾고 싶다. 차라리 책을 봐야지.      


공간, 시간, 의식에 민감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무실인지, 집인지, 공원인지, 들판인지, 산인지 바다인지에 따라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나의 감정도 이제는 공간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      


그 다음엔 시간. 오전에는 의욕이 생기고, 저녁에는 다소 감성적이 되지만, 낮에는 대체로 무기력하다. 예전의 나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 정도가 황금시간대였다. 하지만 요즘엔 그 시간에 누워있거나 이미 잠들어 있다.      

의식. 과거 어떤 시점의 나를 떠올리면, 나쁜 인간관계를 떠올리면 자책감과 죄의식 마저든다. 나의 의식은 그곳으로 가지 않는 게 상책일까. 의식이 미래로 가는 일도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어쨌거나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나는 주로 자책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편이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렇다. 그런데 요즘 달라졌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누군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사람 관계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차이가 반드시 자책이나 반성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특히 원만하지 않은 관계라면, 쌍방 과실일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내가 오롯이 감당할 필요는 없다. 관계를 종료하거나, 차이를 인정하거나 서로를 존중하면 된다. 그걸로 끝이다. 나를 탓하며 분위기에, 상대의 감정에 끌려가는 일은 그만 하자.      


시간은 빨리 간다. 의욕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가도 금세 힘이 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보고 싶은 책도 많고, 재미있게 지낼 방법이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인생을 모독하는 일 아닐까. 재미있는 일, 신나는 일, 흥분되는 일을 찾고 싶다. 


뿌연 안갯속에도 해는 떠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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