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일기 6] 천리 가기에 애써야 할까, 십 리라도 제대로 걸을까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하지만 아직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고사리 손을 녹여가며 썰매를 타고 있습니다.”
뉴스나 기사에서 접해보았음직한 문장이다.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기사가 아닌 문학이나 수필의 문장이라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이른바 ‘죽은 비유’ 탓이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 ‘동장군’, ‘고사리 손’은 아주 옛날엔 신선하고 적절한 표현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마치 사람이 세 끼 밥을 먹는다고 하듯이 이것은 더 이상 비유로 쳐주기 어렵다. 꼭 필요할 때 말고는, 글에서 사용하면 재미가 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티끌 모아 태산, 하늘에 별 따기, 눈덩이처럼 커졌다,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북이 걸음 ……. 다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좋았던 문장이나 표현, 비유라 하더라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특정 문학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부터는 일상어에 가깝다. 아니 오히려 글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상말속담사전>(동문선)이라는 책을 보았다. 1990년대 초판인데, 벌써 30년이 지났구나. 제목에 걸맞게(!) 욕설과 외설로 받아들일 만한 속담이 가득 들어있었다.
짐작하다시피 남녀의 성기나 성교와 관련된 내용을 주를 이뤘다. 그런데, 그런 표현이 의외로 재치있고 특정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감탄을 했다. 아주 궁한 사정에 처한 사람에겐 “손자 ○○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는다.”고 말하거나, 여자를 너무 밝히는 바람기 가득한 남자를 두고는 “총독부 말뚝” 같다고 하면 꼭 들어맞는 비유일 것 같다.(덧붙이자면, ‘총독부 말뚝’은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무작위로 말뚝을 박아 착취하던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이승문 밖이 저승이다
심술만 먹어도 삼년은 먹겠다
달래 놓고 눈알 뺀다
도둑놈 집에 불한당이 들었다
정 끊는 칼 없다
주객이 청탁을 가릴까?
첫 사랑 삼년은 개도 산다
빨래는 떼도둑이다
알고 죽는 해소병
제 덕석 뜯어먹는 소다
참깨가 기니 짧으니 한다
흉은 없어야 아홉가지
책을 정독하고, 괜찮은 속담을 필사해본다. 아무래도, 노골적인 속담은 글로 적거나 써먹기가 쉽지 않기에 ‘수위’가 낮은 속담이 주가 된다.
몇 시간을 걸려서 필사를 하니, 한밤중이다. 또 하루가 이렇게 갔구나. 요즘 나의 상태는 어떨까. 나는 지쳐있다. 2,30대의 젊음과 패기도 옛날 말이다. 책에 나온 속담 한 문장으로 얘기하자면 이렇다.
‘지금 십 리가 옛 천 리다.’
예전의 왕성하고 혈기 넘치던 나만을 떠올리면, 하루에도 천리를 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다시 천 리를 목표로 노력과 연습을 해야 할까, 아니면 십 리라도 제대로 걸어야 할까. 아무튼, 나에겐 지금의 십 리가 예전의 천 리야. 그걸 인정해야겠어. 아프지만 어쩌겠어. 그게 지금의 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