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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군 Mar 12. 2017

보통의 존재

OutTake #01. <H2>의 조연 '키네', 컷과 컷 사이

  스포트라이트는 평범함을 조명하지 않는다. 144. 초등학교 시절, 오랜 시간동안 책장을 넘기고 블록을 옮긴뒤 넘겨받은 받은 아이큐 수치다. 숫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으나 이어지는 주위의 칭찬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스스로가 평범한 사람이란 걸, 인지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는 일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선행반, 영재라는 말이 가득하던 교실 안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를 좋아한 이유는 비범함에 대한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히로’는 센카와 고등학교의 에이스 투수다. 소꿉친구이자 라이벌인 ‘히데오’는 메이와치 고등학교의 간판타자다. 둘 모두 전형적인 천재형 캐릭터다. 타고난 재능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이런 둘의 모습을 꿈꾸며, 침대 위 천장에 수도 없이 고교 에이스 투수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시간이 날 때면, 책장에 놓인 <H2>를 꺼내 읽기를 반복했다. 언젠가부터 히로와 히데오 외에 다른 인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히로의 팀 동료, ‘키네’가 그 주인공이다. 키네는 전형적인 밉상 캐릭터다. 축구부원으로 야구 애호회를 무시하고 없애고자 한다. 같은 팀, 히로의 승리를 배 아파한다. ‘키네’는 본래는 리틀야구의 에이스였다. 히데오에게 팀의 4번 타자 자리를 빼앗긴다. 세상이 키네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범함에서 평범함으로 자리를 옮긴다. 중심에서 주변부로 옮겨진다. 키네의 어리광, 속이 좁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열등감에 가깝다. 이런 키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일련의 시간과 닮아있다, 스스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는 모습과.


 

‘제 꿈은 고등학생이 되어 고시엔에 나가서 삼진을 많이 잡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비웃기만 하던 키네의 꿈이다. 사실상 등판할 가능성 없는 두번째 투수는 홀로 자신의 꿈을 간직해왔다, 투구연습을 하루도 쉬지 않으면서. 그런 키네에게 고시엔 무대의 선발 등판이라는 기회가 찾아온다.


 키네의 승리는 <H2>의 이야기 흐름 상 당연한 결과다. 히로와 히데오의 맞대결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여운이 가장 큰 이유는 키네의 승리가 곧, 보통의 존재의 승리라는 지점이다.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있는 꿈을 실현시키는 과정, 인생의 승리가 특별한 존재만의 것이 아니라는 작은 응원이다. 현실에 치인 일상 속 당신만의 고시엔에서 승리를 응원한다. 만화 속은 키네와 같은 내가 주인공인 어렵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세상의 주인공은 가장의 보통의 존재들이다.'힘내, 지지마'는 히로보다 키네를 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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