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
남편과 저는 2년 차 신혼부부이자 7년째 함께 하는 중입니다. 연애시절부터 열성적이게 다투는 저희입니다. 으르렁으르렁, 왁왁대면서 씩씩하게 싸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지요. 싸운 이유는 '틀리다'에 꽂혔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려' 사소한 거 하나라도 이해할 수 없으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사소한' 거 하나도 이해할 수 없으면 더 큰걸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서로를 파헤치고 해 집어 놓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서로 깊게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봤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게 7년째 함께해 오면 이제 덜 다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아직입니다. 그제 크게 다투었습니다. 단계별로 나누자면 이렇습니다.
[1단계 : 화르륵, 화르륵, 캠프파이어]
'불'이 붙은 남편이 다가옵니다.
화'가 난 상태입니다. 나름 정제했다지만 타는 불꽃은 눈에도 눈썹에도 표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럼 저는 그냥 떨어져 있기보다 다가가서 몸에 불을 붑입니다.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말입니다. '왜? 그걸로 화를 내는데?' 그리고 불타는 겁니다. '화르륵, 화르륵' 불이 붙은 이유는 존재할 텐데, 이미 '불'이 붙어진 상태에서 타기만 합니다. 서로 재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예전 기억들까지 끄집어와서 장작을 더 넣습니다. 내가 더 큰 불이어야 합니다. 이유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다가 돌림노래?를 하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나를 왜 불붙게 하냐, 저는 남편에게 불이 안 붙으면 되지 않냐, 그럼 남편은 불붙을 만한 일이지 않느냐, 저는 남편에게 꼭 그렇게 불이 붙어야겠냐,를 반복합니다. 울고불고 소리치기도 하면서 환장의 캠프파이어를 합니다. 이 장작들이, 감정들이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끝없이 타기만 할 것 같습니다.
[2단계: 활활, 모닥불]
이 단계로 넘어가면 불은 어느새 사그라듭니다. 이래서는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림노래를 멈추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왜 그게 당연한 건데"
".........."
"아, 알겠어. 근데 난 이래서 이렇게 한 거지!"
아직 불은 꺼지지 않아 열기는 뜨겁지만, '이래서 그랬구나.'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과하고 끝내면 좋겠지만, "내가 이런 건 네가 이래서야"라며 '니탓'을 시전 합니다. 1단계 2단계를 넘나드는 고착상태에 빠져듭니다.
[3단계: 타닥, 타닥, 휘날리는 잿더미]
그러다가 발견합니다. 검게 타버린 우리를 말입니다. 불씨는 꺼질 듯 말 듯 깜박 깜빡이고 하얀 잿더미만 날립니다. 차가운 바람이, 이성이 찾아옵니다. 그제야 생각만 하던 그 이야기를 합니다. "이래서 그랬구나. 미안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남편이 말합니다. "그 한마디면 끝나는 일이었어."
싸움의 패턴이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리해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린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단계를 나눌만한 큰 다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눈치를 보고 잘 알아차리죠. 그리고 큰 다툼이 일어날 경우 1단계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유, 예전에는 반나절에서 하루 넘어서까지 계속된 적도 많습니다. 또 3단계에서 잘잘못을 따져 '사과를 받는 사람'과 '사과를 하는 사람'이 명확하게 나누어 있었던 예전과 달리 '서로' 사과를 합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싸우는 저희이기에 상처 주는 말들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맘에 없는 말들도 많습니다. 화르륵 타버리는 동안에 장작이 될만한 건 다 태우거든요. 그 과정을 사과합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싸우는 것보다 싸우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말합니다. 다투다 보면 다툴 때의 말투, 표정, 행동에 기분이 상하고, 어느 순간 다투는 원인,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서 이기기 위한, 또는 상처주기 위한 말들을 지어내기도 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다툼에서 알아차린 게 있습니다. 다툼이 끝나고 나서 화해를 하고 나서도 그 말들이 상처가 돼서 내 안에 쌓여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게 장작이 될지 몰랐습니다. 제가 다툼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지고 나아졌음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제 싸움을 끝으로 모든 과거의 기억을 태우기로 결심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장작 하나라도 남아있지 않게 모조리 버리려고 합니다.
큰 다툼의 원인은 결국은 '생존'의 문제가 건드려질 때인 것 같습니다. 이걸 '가치관'이라고 부르지요. 남편과 저는 가치관이 아무리 같다고 하지만 그 '우선순위'는 미묘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배워야 하는 거지요. 결국, 익숙하다 보니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게 되고 깊은 대화가 부족하게 되면서 미묘한 우선순위의 차이에서 나와는 말과 행동들이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왜 너 나랑 똑같이 생각하지 않아? 왜 나한테 그런 걸 말하지 않았어?"
재밌는 건 이 선이 내 상태에 따라 넓어졌다가 줄어들어다가 한다는 겁니다. 어느 날, 나의 경계선이 이만큼 넓어졌다가도 다시 한없이 쪼그라들기도 하는 걸 뒤늦게나마 느낍니다.
무수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입니다. 그러니 상대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이 필요하고 서로에 대한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다투고 나면 불안함이 옅게 깔려있음을 느낍니다. 서로가 이 일로 멀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우린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정말 나아지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불쑥 솟기도 합니다. 화해하고 서로 사과하고 잠이 들었는데도 썩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침에 화장실에 가면 그런 기분은 바로 사라져 버립니다. 저보다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제 칫솔에 짜놓은 치약을 보면 다시 일상임을 느낍니다. 남편이 짜놓은 치약으로 칫솔질을 하면서 다짐합니다. 어제의 폭풍우는 지나갔구나, 그리고 우리는 더 사랑하고 아껴줘야겠구나,라고 말입니다.
화르륵 불태우면서 다투고 나면 우린 이미 더럽혀진 관계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 마음 상태가 안 좋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과연 그럴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왔을까? 우린 정말 그걸 원하고 있는 걸까? 진심이 통한다고 하는 데 과연 그럴까? 그와 함께 해온 추억과 세월, 작은 변화들을 떠올려봅니다. 그 안에 쌓인 신뢰가 저를 생각 속에서 끄집어 내줍니다. 더럽혀졌다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그리는 아주 큰 그림에 아주 작은 점일 뿐입니다. 그 다툼이 길가에 작은 돌멩이로 그려질지, 용서와 화해라는 색을 더해 해바라기 꽃의 일부분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다투더라도 관계를 속단하고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투는 방식은 좀 더 부드러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화르륵 불타지 않을 방법은 장작을 쌓아놓지 않는 것, 그리고 젖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늘 궁금해하며 대화를 멈추지 않고 사랑과 믿음 속에 푹 젖어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