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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ug 11. 2023

목수가 되고 싶은 기자

어쩌다 정신병원 (24)


목수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소위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여성들이 최근 목공이나 공사현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본 후 실제로 학원까지 알아봤다.


목공에 딱히 뜻이 있어서는 아니다.


꼼꼼한 성격도 아니고 끈기가 부족한 내게 적합한 직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부활절 달걀을 고르듯 기웃거렸다.


왜냐면 항상 미치도록 불안하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상담소에 나온 개그우먼 박세미 님은 일을 안 하면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오래 지속된 무명 생활과 가난 때문에 갑자기 일이 사라질까 봐 너무 걱정되고, 본인 인기와 성취의 70% 정도는 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박세미 님이 ‘가면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은 삶이나 업무에서 달성한 성과에 대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 자신이 일을 잘하거나 칭찬을 받아도 동료들을 속이고 있거나 그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심하면 본인을 사기꾼처럼 느끼기도 한다.


전 메타 (Meta) COO이자 베스트셀러 ‘Lean In’ 저자 셰릴 샌드버그도, 해리포터 주연배우 엠마 왓슨도 가면 증후군을 겪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사연을 듣던 정형돈 님도 치열한 엔터 세계에서 본인의 성공과 인기가 대부분 운이라고 생각해서 괴로웠다고 말했다.


정형돈 님은 심리 상담 도중 의사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다’라고 했다고 한다.


기술은 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내가 항상 해왔던 생각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1) 내가 이룬 모든 것의 70%는 운이고 (심지어 박세미 씨와 퍼센티지까지 똑같다)


2) ‘운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지은 모래성이 허물어질 수 있고


3) 모래성이 허물어지면 아무 능력이 없는 나도 같이 부서질 것 같으니


4) 기술을 배워야 한다.  


5) 하지만 그럴 의지나 끈기조차 없는 내가 한심하다.


이렇게 고구마 천 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하고 답이

없는 무한 자기혐오와 불안 안에서 헤엄쳐왔다.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 것이, 운, 아니면 나의 ‘포장 능력’ 덕분에 이뤄진 것 같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구글 인턴 어떻게 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운이 좋았다고 대답한다.


이력서를 백번 이상 냈지만 운이 좋아서 외신기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전부 서류 심사와 여러 번의 인터뷰 그리고 실무 검증을 거쳤다. 하지만 그 과정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유난히 좋은 날씨와 재수가 좋아 들어선 평탄한 산길 때문에 지금까지 등산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겸손이 아니다.


정말 이렇게 믿고, 또 믿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운이 좋았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커리어와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무급으로 버틴 인턴 시절과 수입이 불안정했던 프리랜서 기자와 미디어 스타트업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부지런히 채근하고 설득해도 일거리가 하나 들어올까 말까 했다. 카페에서 카드가 거절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날도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꿈에 그리던 외신기자가 되었지만 어쩐지 불안은 그대로다.


운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과 갑자기 모래성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덕분에 과거보다 더 불안하다.


아예 실체가 없는 불안함은 아니다.


사양산업인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고,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가슴속 불안은 항상 터질 것 같은 풍선 같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평생 기댈 수 있는 ’ 기술’을 알아본다.


통역 장교, 목수, 해녀, 피부 관리사 등등. 지금까지 진지하게 알아본 직업들이다.


참고로 통역 장교 시험은 꽤 어렵다고 해서 학원까지 알아봤지만 장교 입대 나이 제한 때문에 접었다.


해녀는 하루에 4시간 성실하게 물질을 하면 월 500을 번다고 해서 혹 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해녀 체험을 하는 동안 조개 하나 건지지 못했다.


피부 관리사는… 군데군데 패인 여드름 자국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올 손님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가끔씩 등대 하나 없는 밤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다. 가까운 등대를 알려주는 이도, 앞으로 등대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도를 보여주는 이도 없다. 위태롭게 수영을 하다 보면 불안이 안개처럼 갑자기 올라온다.


그러기 때문에, 운에게 과한 credit을 주는 박세미 님과,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는 정형돈 님에게 위로 한 스푼을 얻어간다.


어푸어푸.





to be continued.


배경 사진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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