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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브랜든 Sep 04. 2017

세월의 흐름을 막아라

나는 늙지 않은 거야.

     

고지혈의 치수가 높아서 약을 복용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피검사 결과 보이는 높은 치수를 보게 된 의사의 질문은 늘 동일했다.

“ 담배 끊으셔야 합니다” “담배 안 핍니다”

“술도 끊으셔야 합니다” “ 술은 거의 안 먹습니다”

“ 운동하셔야 합니다” “ 운동은 매일매일.... 하고 있습니다”

“ 부모님이 고혈압이나 혈관질환 있으신가요?” “ 고혈압과 고지혈이 있습니다”

“유전적 요소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유전자 문제라고 말하는 의사를 보면서 ‘조상 탓’을 하면서 고지혈 약을 먹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서 종교적 이유로 안 먹던 술도, 큰 차원의 신을 접하면서 다시 먹게 되었다. 중간중간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혹은 혈관에 좋은 건강식품을 먹는다는 이유로 몇 번인가 고지혈약을 안 먹는 시도를 해 보았지만 결국은 먹지 않으면 치수가 올라간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고지혈약을 먹게 되면서 늘 느낀 것은 세월의 흐름을 없어진 약의 양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세월을 빠르다고 알고 있긴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약이 없어지는 현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른 시간을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제는 가볍게 맥주 한잔을 먹으려고 하는데 가게를 고르고 있었다. 분위기가 참 좋아 보이고 메뉴도 맞아서 들어갈까 고민했는데 내가 말했다. “ 너무 어른들이 많다. 다른 집 가자”

친구가 말한다. “ 야, 남들이 보기엔 우리도 어른이야 ㅎ” 육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에 대한 갭이 너무 큰 것 같다. 자신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나이를 잊고 사는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눈으로 확인되는 고지혈약의 포장단위가 맘에 안 든다. 10개 캡슐로 되어있어 먹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먹는데 먹고 나면 10개 중 남아있는 숫자가 보이면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패키징을 뜯어서 한꺼번에 큰 통에 집어넣었다. 먹어야 할 약이지만, 약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는 아니 내가 늙어가는 인정하고 싶은 나의 마지막 발악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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