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면접은 면접이니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하겠다고 면접 가던 그날 아침엔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겨울바람이 훌치는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장갑 낀 제 손엔 A4용지 2장이 펄럭였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도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저는 조금 낯설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하는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편의점 알바라고 해도 거저 얻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닌가봅니다. 역시 쉬운 게 없습니다.
예상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질문들이야 모두 뻔했습니다. 아마도 점장은 제게 ‘편의점 알바 경력’과 ‘근무 가능 기간’을 물을 테겠죠. 군대에서 1년 반 PX병으로 일했어요, 6개월 정도 근무할 수 있어요, 같은 대답들을 저는 점장에게 말하게 될 것이었죠. 아무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라지만, 그래도 면접은 면접이니까 이 정도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의 예의랄까요.
금방 편의점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역시 900M는 900M입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저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편의점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입니다. 5만원짜리 들고 가서 500원짜리 껌 한 통을 사고 잔돈을 거슬러 받아도 그다지 겸연쩍지 않을 수 있는 곳이 편의점 아니던가요. 흔하디흔해서 여기저기서 매일같이 드나드는 편의점인데도 이날은 왠지 낯설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저도 편의점의 일부가 되어버린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편의점 문을 열었습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어서오세요.”
카운터에서 점장처럼 보이는 분이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면접이 시작됐습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등장한 질문들은 예상했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해 본 적 있어요?”
“POS기는 다룰 줄 알아요?”
“왜 굳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려 하세요?”
“집에서 근무지까지 거리는 얼마나 돼요?”
“일하게 된다면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어요?”
“대학교는 휴학한 상태예요?”
“군대는 다녀왔어요?” 등등
이런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쯤 걸렸을까요. 점장님은 카운터 뒤에 서서 질문했고, 저는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처럼 카운터 앞에 서서 대답했습니다. 그 5분 동안 다른 손님은 매장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들어와서 커피우유라도 하나 사갔더라면 점장님은 “어서오세요” “1,500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같은 자연스러운 멘트를 하시고는, 다시 근엄한 모습으로 제게 “저희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분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겠죠. 그랬다면 저는 조금 어색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면접을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점장님의 얼굴이 수척했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뒀나봅니다. 그 빈자리를 본인이 직접 때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피곤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에 그리도 피곤해 보였던 것은 과로 탓이었겠지요.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점장님이 물었습니다.
“오늘 밤부터도 가능해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인수인계를 받으셔야 할 테니까, 오늘 밤부터 해서 3일 동안은 원래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한테서 일 배우시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전화상으로 이미 말씀드려서 잘 아시겠지만,..”
점장님은 뜸을 들였습니다. 알바몬 알바 모집 공고에도 나오지 않았고, 점장님과의 사전 연락에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주휴수당’과 ‘야간수당’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면접 말미에 ‘추신’처럼 덧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