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가 문을 닫는다.
이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동네가 사라진다.
처음 슈퍼주인아저씨와는 순탄치 않은 시작을 했다.
나는 나보다 큰 패딩을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다녔고 나를 초반에 과자도둑으로 오해했던 주인아저씨는 내가 과자코너만 가면 반사거울 앞에서 나를 감시했다.
오해받기 싫어서 추워도 얇은 옷을 입고 슈퍼에 갔었다. 일부러 남편과 슈퍼를 같이 가고 안면을 트면서 순탄하지 않았던 첫인상과 달리 언제부턴가 길에서 마주친 주인아저씨가 인사를 건네고
내가 슈퍼에 있어도 나에게 슈퍼를 맡기고 주인아저씨가 창고에 물건을 꺼내러 나가기까지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남편과 밤산책할 때 어김없이 들렸던 슈퍼.
휴직 후 요리를 하기 시작했을때 달려가던 동네마트.
(양파도 하나씩. 무도 잘라서. 무더기로 파는 마트와는 달리 식구가 적은 2인가구에 맞게 하나씩 살 수 있어 버리는 것이 적어서 요리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짓수도 많고 근처에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도보거리지만 마트는 동네슈퍼로 입지가 높고 이용고객이 많았다.
동네 아이들도 학교 끝나고 오고 할머니도 오고 아저씨들이 담배 사러도 오고
문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울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슈퍼 마스코트였다.(카운터 한편에는 동네대장고양이가 쉬는 자리도 있었다) 슈퍼를 오는 모든 사람들이 문지기를 자청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슈퍼를 드나들던 고양이는 꼭 한 번씩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아이들은 걱정을 했고 주인아저씨는 그때마다 치료를 해줬다.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어느 날부터 슈퍼에 들어온 고양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슈퍼에 들어와 자리 잡은 고양이는 그리고 어느 날 산책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주인아저씨는 한참이나 고양이 방석을 치우지 않았다.
오지 않을 고양이를 기다리며 방석을 치우지 못하던 주인아저씨처럼
이제 문을 닫을 마트 현수막을 보니
어쩐지 이런 동네슈퍼를 만날 수 있는 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제식구가 아닌 네 식구라 비용측면에서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 게 더 효율적이지만
어쩐지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어 밤산책 후 아이스크림을 사러가고는 했던.
슈퍼에 들어서면 항상 천장에 티브이를 달아놓고 아저씨가 뉴스를 보며 욕을 하고 계산하는 나에게 말을 던지던 아저씨의 잡담이.
여름날 밤 남편과 남편친구가 슈퍼 앞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모습이.
싫은 티 없이 고양이에게 문을 열어주는 조금은 친절한 주민들이 드나들던 동네마트가
가끔은 그리울 것 같다.